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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00521
한자 金元祿
영어음역 Gim Wonrok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광명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지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546년연표보기
몰년 1627년연표보기
본관 광산
대표관직 동지돈령부사

[정의]

조선 후기 광명에 정착한 문신.

[가계]

본관은 광산(光山). 광산김씨 25세손으로 아버지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사헌부감찰(行司憲府監察)을 지낸 김종(金綜)이고, 어머니는 이양(李樑)의 딸이다.

[활동사항]

김원록(金元祿)[1546~1627]은 1588년(선조 21)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후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공조·형조의 좌랑을 역임하고, 1594년(선조 27) 병조좌랑이 되었다. 이어 북청판관(北靑判官)이 되었으나, 적임자가 아니라는 사간원의 반대로 교체되었다. 강원도도사(江原道都事)·어천찰방(魚川察訪) 등을 거쳐 예조좌랑이 되었다가, 1602년(선조 35) 병조정랑이 되었다. 이후 사간원정언·예조정랑·사간원헌납 등을 번갈아 역임하였는데, 이때 사고(史庫)의 정비에 따라 춘추관의 기주관으로 실록 편찬 사업에도 참여하였다.

이어 성균사예(成均司藝)로 외직에 나가 영해(寧海)·희천(凞川)·삼척(三陟)을 다스리다가 1610년(광해군 2) 중앙 부서로 돌아왔다. 이듬해에 왕이 사헌부의 반대에도 노성지인(老成之人)으로 가자(加資)하였다. 1613년(광해군 5) 다시 외직에 나가 금산(錦山)을 맡아 선정을 베풀다가 폐모론이 일어나자 은거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뒤 돈령도정·동지돈령부사가 되었다. 김원록광명시 일직동 자경마을에 정착하였으며, 돈령공파(敦寧公派)의 파조(派祖)가 되었다.

[학문과 사상]

양사언(楊士彦)·남언경(南彦經)의 문인으로 문장이 뛰어나 임진왜란 이후 실록을 재편찬하는 사업에 참여를 하였다. 장유(張維)[1587~1638]의 시문집 『계곡선생집(谿谷先生集)』 제28권 동지중추부사 김원록만시[金同知元祿挽]에는 고결한 풍모를 지녔으며 글과 문학을 중하게 여기던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묘소]

묘소는 광명시 일직동에 있으며, 묘비와 상석·망주석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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