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0514 |
---|---|
한자 | 薛繼祖 |
영어음역 | Seol Gyejo |
이칭/별칭 | 홍서(弘瑞),만은(晩隱),옥천군(玉川君),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안양(安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동인 |
[정의]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경모재에 모신 조선 전기의 무신.
[가계]
본관은 순창(淳昌). 자는 홍서(弘瑞), 호는 만은(晩隱). 아버지는 창덕궁(昌德宮) 직장(直長)을 지낸 설훈(薛纁)이며, 어머니는 고령신씨로 신숙주(申叔舟)의 고모이다.
[활동사항]
설계조(薛繼祖)[1418~1486]는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모정리(茅亭里)에서 태어났다. 25세인 1443년(세종 25) 무과에 급제하였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癸酉靖難) 당시 수양대군(首陽大君)을 도와 김종서(金宗瑞)·황보인(皇甫仁) 등을 제거하는 데 공을 세웠다. 1456년(세조 2) 군기부정(軍器副正), 1457년(세조 3) 사복소윤(司僕少尹), 내자소윤(內資少尹)을 역임하였다. 1463년(세조 9) 경상우도처치사(慶尙右道處置使)에 제수되었고, 여러 요직을 거치다가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고향인 순창에서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신반리로 이거하였다.
설계조는 신반리 수람영에 대를 쌓고 집 뒤에다 정자를 지어 한가롭게 지내며 풍월을 읊고 낚시와 거문고로 유유자적하니 당시 사람들은 그 정자를 대부정(大夫亭)이라 하고, 그곳을 옥천대라 하였다고 한다. 대부정 뒤 석벽에는 설계조의 사적이 기록되어 있다. 옥천대는 그 뒤의 병난에 소실되었지만, 그 부근의 들은 지금도 옥천들이라 부르고 있다. 설계조는 1486년(성종 17) 69세로 별세하였다.
[묘소]
묘소는 충청남도 금산군 금북면 내부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1455년(세조 1) 선략장군용양시위사후령호군(宣略將軍龍驤侍衛司後領護軍)으로 추충정난공신(推忠靖難功臣) 3등에 책록되고, 옥천군(玉川君)에 봉작되어 전지 100결, 노비 7구, 말 1필, 백은 10냥, 채단 한 벌을 하사받았다. 1595년(선조 28)에는 증손자 설우범(薛禹範)이 병마절도사로 선무원종공신 1등에 오른 공로로 좌찬성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에 추존되고 안양(安襄)이라 시호가 내려졌다. 현재 광명시 학온동 가골에 전해지는 사묘인 경모재(敬慕齋)는 약 300년 전 후손들이 광명 지역에 이거하면서 지은 것으로 알려진다. 1943년에 개축하고 1994년 보수하였다. 경모재에는 설계조의 영정으로 알려진 미완성 모본 한 점이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