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04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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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東晩墓 |
영어의미역 | Tomb of Jeong Dongma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57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권만용 |
성격 | 능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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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방부옥개형(方趺屋蓋形) |
건립시기/일시 | 1853년 |
관련인물 | 정원용|정계순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572 |
[정의]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정동만의 묘소.
[개설]
정동만(鄭東晩)[1753~1822]의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우고(友古), 호는 졸암(拙庵)이다. 아버지는 대사간을 지낸 정계순이며, 아들은 영의정을 지낸 정원용(鄭元容)이다.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고 1804년(순조 4) 경릉참봉(敬陵參奉)이 되어 경기도 고양군에 나갔으며, 1807년에 의영고봉사(義盈庫奉事)가 되었다. 1810년 영유현령(永柔縣令), 1813년 재령군수(載寧郡守), 1815년 순흥부사(順興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여러 벼슬을 거친 뒤 진주목사(晋州牧使)가 되었고, 1819년 다시 내직으로 들어와 혜국(惠局)의 낭(郎)이 되었다. 1822년에는 아들 정원용이 문과에 급제하여 크게 영달하였고,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내고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이 되어 왕실 친족 간의 친목 도모에 진력하였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위치]
정동만 묘는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572번지[사들]에 있는데, 제2경인고속도로의 광명인터체인지를 나와 지방도 351호선을 타고 남행하면 바로 도로 좌측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정동만 묘 주변에는 정동만의 무덤과 아들 정원용의 무덤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무덤에는 상석, 향로석, 망주석, 묘갈 등이 갖추어져 있는데, 봉분의 호석은 최근에 단장한 것이다. 상석은 고석과 계체석으로 올려져 있으며, 향로석은 직사면체이다. 묘갈은 방부옥개형으로 크기는 높이 151㎝, 폭 54㎝, 두께 34㎝이며 비신의 석재는 오석이다.
[금석문]
비신의 전면 상단에는 ‘증 의정부영의정 행 돈녕부도정 동래정공 휘 동만묘 증 정경부인 용인이씨 부좌(贈議政府領議政行敦寧府都正東萊鄭公諱東娩墓贈貞敬夫人龍人李氏祔左)라 새겨져 있으며, 나머지 전면 중 하단과 삼면에 비문이 적혀 있다. 비문은 아들인 영의정 정원용이 짓고, 손자인 홍문관부제학 정기세(鄭基世)가 썼으며, 건립 시기는 1853년(철종 4)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