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04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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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元容墓 |
영어의미역 | Tomb of Jeong Wonyong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산 572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동인 |
성격 | 능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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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876년 |
관련인물 | 정원용 |
높이 | 1.51m |
너비 | 54㎝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산 572 |
소유자 | 정진흡 |
문화재 지정번호 | 광명시 향토문화유산 제2호 |
문화재 지정일 | 1985년 12월 24일 |
[정의]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문신 정원용의 묘소.
[개설]
정원용(鄭元容)[1783~1873]은 1802년(순조 2)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가주서를 거쳐 예문관검열, 홍문관부응교, 이조참의, 대사간, 강원도관찰사 등을 지내다가 1831년 동지사로 청나라 연경에 다녀왔다. 1837년(헌종 3) 예조판서에 오르고 이어 이조판서,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중추부판사가 되었다가 1848년 영의정이 되었다.
이듬해 헌종이 죽자 덕완군[철종]을 옹립하고 영중추부사가 되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임술민란이 일어나자 궤장을 받은 노령임에도 삼정이정청(三政釐正庁)의 총재관(総裁官)이 되어 다시 정계에 나섰다. 1863년 철종이 서거하자, 원상(院相)이 되어 고종이 즉위하기까지 국정을 관장하였고, 이듬해에는 실록청의 총재관이 되어 『철종실록』의 편찬을 주관하기도 하였다.
권문세가 출신으로 20여 년 간 여러 차례 영의정을 지냈지만, 늘 검소하게 생활하여 청렴결백하였다고 한다. 저서로는 『경산집(経山集)』 40권, 『황각장주(黄閣章奏)』 21권, 『북행수록(北行随録)』 10권, 『수향편(袖香編)』 3권, 『문헌촬요(文献撮要)』 5권 등이 있다. 시호는 문충이다.
[위치]
정원용 묘는 제2경인고속도로의 광명I.C를 나와 지방도 351호선을 타고 남쪽 방향으로 가면 바로 도로 좌측에서 확인할 수 있다. 행정 구역상으로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산572번지이다.
[형태]
무덤은 부인 강릉김씨와 합장되어 있고, 상석(床石), 향로석(香爐石), 망주석(望柱石), 묘갈 등이 갖추어져 있는데, 봉분의 호석은 최근에 단장한 것이다. 상석은 고석(鼓石)과 계체석(階砌石)으로 올려져 있으며, 향로석은 직사면체이다.
[현황]
정원용 묘에는 그의 무덤과 함께 부친인 정동만(鄭東晩)의 무덤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1985년 12월 24일 광명시 향토유적 제2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동래정씨인 정원용의 행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최근까지 해마다 음력 정월 초이틀에 정원용의 혼백을 위로하기 위한 군웅제가 설행되어 이 지역에서의 정원용의 위상과 마을 공동체 의식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