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04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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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光明李元翼肖像畵 |
영어의미역 | Portrait of Yi Wonik |
이칭/별칭 | 초모본 이원익 영정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1085-2[오리로347번길 5-7]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현규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9년 6월 24일 - 광명 이원익 초상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24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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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광명 이원익 초상화 경기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성격 | 초상 |
제작시기/일시 | 1604년 |
소장처 | 충현박물관 |
소장처 주소 |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1085-2[오리로347번길 5-7] |
소유자 | 충현문화재단 |
문화재 지정번호 | 경기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충현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이원익의 초상.
[개설]
광명 이원익 초상화는 조선시대 문신인 오리 이원익(李元翼)[1547~1634]의 영정 중의 하나이다. 2009년 6월 24일에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24호로 지정되었다. 광명 이원익 초상화의 주인공인 이원익의 자는 공려(公勵), 호는 오리, 본관은 전주이다. 태종의 아들 익녕군(益寧君) 이치의 현손(玄孫)이며, 이억재의 아들로 태어났다. 1569년(선조 2)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대사헌, 호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지냈으며 조선시대 대표적인 청백리로 유명하다.
광명 이원익 초상화는 지난 1978년에 경기도 유형문화재 80호로 지정된 「이원익 선생 영정」, 2005년에 보물 1435호로 지정된 「이원익 초상」에 이어, 세 번째로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혼돈을 피하기 위해 광명 이원익 초상화로 명명되었다. 2009년 6월 24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2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광명 이원익 초상화는 이원익이 임진왜란 때 세운 공으로 호성공신에 봉해진 것을 축하하기 위해 내려진 공신도상을 그리기 전에 만들어진 바탕본으로 추정되며, “만력32년갑진완평부원군이화상초(萬曆三十二年甲辰完平府院君李畵像草)”라는 화기가 남아 있어 연대를 알 수 있고, 양식 또한 호성공신도상과 유사해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특히 광명 이원익 초상화는 안면 묘사에 있어서 이원익 호성공신도상보다 이원익의 성격적 특성과 정신적인 면모가 탁월하게 묘사되었고, 50대인 장년의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으며, 1604년(선조 37)경의 도상으로서 보존 상태도 매우 양호한 작품이다.
[형태 및 구성]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의 전신상으로, 오사모(烏紗帽)에 흑단령(黑團領)을 입고 공수(拱手)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사모의 양쪽에는 운문(雲紋)이 들어가 있는 등 호성공신도상인 「이원익 초상」과 흡사하다. 호성공신도상의 형태와 흡사한 점으로 보아 공신도상을 제작할 때 그린 초모본이거나, 그 초모본을 후대에 다시 모사한 것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크기는 156×82.5㎝이다.
[특징]
양쪽 어깨선과 흉배 윗부분에 칼로 예리하게 자른 흔적이 보이는데, 이는 광명 이원익 초상화가 상반신만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흉배 윗부분만 있던 것을 후대에 윗부분의 색깔과 비율을 고려하여 아랫부분을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된 『호성선무청난공신도감의궤(扈聖宣武淸難功臣都監儀軌)』에 따르면, 대상 인물의 얼굴 초본을 그리고[草模], 화가가 실제 인물을 대면하고 나서 신체의 비례를 파악하여 전체 그림을 완성하는 방식[正畵]으로 그려졌다고 한다. 즉 초모와 정화의 과정을 거친 것이다. 이것으로 미루어볼 때 광명 이원익 초상화는 공신도상의 제작 과정의 한 단계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