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03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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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蒙利面積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안홍민 |
[정의]
근대 개항기 경기도 광명 지역에 있는 관개 시설에서 물을 공급받는 땅의 면적.
[개설]
몽리면적은 보, 저수지 등의 수리 시설에서 물을 공급받는 토지의 크기를 말한다. 관리의 탐학이 주로 이 땅을 놓고 벌어졌는데, 이것이 제1차 시흥농민봉기의 원인이 되었다. 성우경(成禹慶) 등 현재의 광명 지역 출신 인사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던 사건으로, 전임 군수 문봉오의 가혹한 수탈과 교활한 아전의 작폐에 대한 대대적인 저항운동이었다.
[내용]
당시의 사건 조사 과정에서의 공초 내용을 보면 시흥군 서면[현 광명시 일직동]에 있던 유목정보(柳木亭洑)라는 보에서 1백여 석락 정도의 몽리면적이 혜택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서울의 현학명(玄學明)이 보민(洑民)의 개간지를 탈취할 뜻으로 전 군수 문봉오가 재직할 때에 소송을 제기하였고, 관에서는 토지 문서를 억지로 빼앗아 현학명에게 넘겼다. 이 재판이 1차 시흥농민봉기를 일으키는 한 원인이 되었다. 그 결과 집강인 최익중이 체포되고, 최익중의 조카 최대시가 곤장을 맞고 물고문을 당했으며, 여러 농민도 장형을 받는 등 피해를 입었다.
[의의와 평가]
19세기 후반 당시 지방 관리의 토지 탈취 등의 탐학상을 살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