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0365 |
---|---|
한자 | 馬韓 |
영어음역 | Maha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
시대 | 고대/초기 국가 시대 |
집필자 | 김덕원 |
[정의]
초기국가시대 경기도 광명 지역을 포함해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에 분포되어 있던 정치연맹체로, 삼한 중의 하나이다.
[개설]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에는 마한(馬韓) 지역에 위치한 54개 소국(小國)의 명칭이 기록되어 있는데, 큰 것은 1만여 가(家)에서부터 작은 것은 수천 가에 이르렀다고 나와 있다. 마한 54개 소국은 규모가 큰 나라의 지배자는 신지(臣智)라 하고, 작은 나라의 지배자는 읍차(邑借)라고 하였는데, 소국의 대부분은 B.C. 3~2세기 이래 세형동검문화(細形銅劍文化)를 배경으로 등장한 다수의 정치 집단들이 지속적으로 성장·발전하여 한강 유역에서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에 이르기까지 분포하고 있었다.
마한 소국 연맹체의 맹주는 목지국(目支國)[『삼국지』에는 월지국(月支國)으로 기록되어 있음]의 진왕(辰王)이었다. 목지국의 위치는 충청남도 직산·성환·아산만 일대나 공주, 또는 전라북도 익산 등지로 비정되고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마한은 B.C. 1세기 무렵 북쪽에서 이주한 온조(溫祚) 집단이 세운 백제국에게 주도권을 빼앗겼지만, 4세기 후반 백제의 근초고왕(近肖古王)에게 병합되기 이전까지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였다.
[변천]
마한 지역에서는 B.C. 2세기 무렵에 이미 대외적으로 통일된 기능을 발휘하는 세력 구심체가 형성되어, 한(漢)과 원거리 통교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결속 기반은 아직까지 무력을 배경으로 하는 지배·복속 관계나 마한 지역 전체를 포괄하는 강력한 연맹체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다만, 충청남도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일정 범위 내의 정치 집단들이 결속되어 마한 지역의 주도 세력으로 기능하며 마한 소국 연맹체의 토대를 이루고 있었다.
B.C. 1세기에 북쪽에서 이주한 온조 집단이 한강 유역으로 이주하여 백제국을 건국한 이후 마한 소국 연맹체 내부는 급속하게 변화하였다. 백제국은 초기에는 토착 소국 연맹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마한왕(馬韓王)에게 맹주국(盟主國)에 대한 우대의 격식을 취하였다. 그러나 점차 주위의 소국들을 병합하여 3세기 중반 이후에는 세력을 충청남도 지역까지 확대하면서 목지국 진왕 중심의 조직체를 약화시키고 독자적인 세력권을 확립하였다.
이때부터 백제국 중심의 소국 연맹체는 마한의 주도 세력으로 새롭게 등장하여 대외적인 정치·경제적 교섭을 주관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백제국의 세력권에 포함되지 않은 남부 지역의 마한 소국들은 4세기 후반 백제 근초고왕에 의해 병합되기 이전까지, 종래의 기반을 토대로 독자적인 세력권을 유지하였다.
[내용]
마한의 54개 소국 중 경기도 지역에는 화성 또는 파주·연천의 원양국(爰襄國)을 비롯하여 15국이 존재하였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광명 지역에도 마한의 소국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청동기시대 지배자의 무덤인 고인돌[또는 지석묘]이 분포되어 있는 철산동과 가학동의 고인돌 유적을 통해서 이러한 가능성이 뒷받침될 수 있으므로, 앞으로 이와 관련된 조사ㆍ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