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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00285
한자 京畿誌
영어의미역 The Town Chronicle of Gyeonggi
분야 지리/인문 지리,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광명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동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읍지
저술연도/일시 1842~1843년연표보기연표보기
책수 4책
표제 京畿誌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처 주소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56-1 103동[관악로 1]

[정의]

1842~1843년 경기도 광명 지역의 옛 군현 읍지인 『시흥읍지(始興邑誌)』를 포함해 경기도의 33개 군과 영종진(永宗鎭)의 읍지를 묶은 통지(統誌).

[서지적 상황]

『경기지(京畿誌)』는 총 4책으로 구성된 필사본으로 판식은 사주단변의 형식이며, 반광은 22.8×16.4cm 크기에 경계가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형태]

30.3×20.3cm 크기이며, 표제는 ‘경기지(京畿誌)’이다.

[구성/내용]

먼저 앞장에 시흥읍의 지도가 있고, 다음에 건치 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방리(坊里), 호구(戶口), 도로(道路), 형승(形勝), 성지(城池), 관직(官職), 산천(山川), 능묘(陵墓), 단묘(壇廟), 공해(公廨), 제언(堤堰), 창고(倉庫), 물산(物産), 교량(橋梁), 역원(驛院), 목장(牧場), 관애(關阨), 봉수(烽燧), 누정(樓亭), 제영(題詠), 사찰(寺刹), 고적(古蹟), 진보(鎭堡), 인물(人物), 전답결(田畓結), 균역청(均役廳), 진공(進貢), 군총(軍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기지(京畿誌)』는 1757~1765년(영조 33~영조 41)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와 비교할 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수록된 지도의 작업은 유사하나 면리(面里)를 기재한 읍이 늘어났다. 둘째, 방리와 도로가 별도로 설정되고, 방리에 속했던 호구(戶口) 조가 분리되었다. 셋째, 『여지도서』는 뒷부분에 한전(旱田)·수전(水田)·진공(進貢)·조적(糶糴)·전세(田稅)·대동(大同)·균역(均役)·봉름(俸廩)·군병(軍兵) 등의 항목을 집중적으로 배치하여 읍의 재정 단위로서의 기능을 강조하는 한편, 인물(人物) 조의 수록 인물이 대폭 줄어들고 시(詩)·기문(記文) 등이 생략되었다. 이에 비해 『경기지』는 제영(題詠) 조를 신설하여 시·기문 등을 기록하고, 인물 조를 세분하여 수록 인물이 늘어났다. 또한 과거(科擧)·읍선생안(邑先生案) 조를 신설하였고, 명현(名賢)의 묘가 기록되는 등 인문·문화 관계 기사가 보충되었다.

한편, 『여지도서』에서 강조되었던 읍의 재정 기능은 상대적으로 약화되어 기록되고 있다. 『여지도서』의 한전·수전·전세·대동·균역 등의 항목이 결총(結總) 또는 전부(田賦) 등 1항목으로 축소되고 항목 배열 위치가 달라졌다. 한전·수전·진공·조적·전세·대동·균역·봉름·군병 등의 항목이 호구 조 신설과 함께 호총(戶總)·결총(結總)·군총·환총(還總) 등 4항목으로 고정되는 경향을 보인다.

『여지도서』가 대동법과 균역법 등 조세 수취 제도 개선이라는 중앙 정부 주도의 개혁 정치를 확인하기 위해 정부에서 각 읍이 작성한 읍지를 일정한 체제로 편집하여 편찬한 것이라면, 그에 대한 지방 세력의 반발이 『경기지』와 같은 형태의 읍지를 편찬하게 한 것으로 추정된다. 넷째, 장시(場市)·책판(冊版) 조가 신설되었다. 『여지도서』가 사회·경제적인 내용에 중점을 두고 있음에 비해 『경기지』는 문화 관계 내용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의의와 평가]

『경기지』는 19세기 전반 광명 지역의 옛 군현인 시흥읍의 자연지리와 인문지리를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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