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02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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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京畿邑誌 |
영어의미역 | The Town Chronicle of Gyeonggi-eup |
분야 | 지리/인문 지리,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동인 |
성격 | 읍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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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연도/일시 | 1871년 |
책수 | 6책 |
표제 | 京畿邑誌 |
소장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
소장처 주소 |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56-1 103동[관악로 1] |
[정의]
1871년 경기도 광명 지역의 옛 군현 읍지인 『시흥읍지(始興邑誌)』를 포함해 경기도의 35개 군의 읍지를 묶은 통지(統誌).
[서지적 상황]
『경기읍지(京畿邑誌)』는 총 6책으로 구성된 필사본이다. 판심은 상이엽화문어미(上二葉花紋魚尾)이며, 판식은 사주단변(四周單邊)이고, 반광(半匡)은 22.4×15.3cm이며, 계선이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형태]
읍지의 크기는 30×20.1cm, 표제는 ‘경기읍지(京畿邑誌)’이다.
[구성/내용]
『경기읍지(京畿邑誌)』는 전반적인 체제를 1757~1765년(영조 33~영조 41) 사이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나 1842~1843년(헌종 8~헌종 9)에 편찬된 『경기지(京畿誌)』의 편찬 체제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러나 이전의 읍지 구성이 ‘도(圖)’와 ‘지(誌)’로 이루어진 것에 반해, ‘사례(事例)’가 추가된 것이 주요 특징이다. ‘사례’는 『여지도서』의 ‘한전(旱田)’ 이하 부분이 더욱 발전된 형태인데, 흥선대원군의 내정 개혁이 반영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와 관련한 호구(戶口)가 1870년(고종 7)의 경오식(庚午式) 호적에 의해 기재된 경우가 많고, 서원 철폐와 호포제 실시, 환정(還政) 개선, 군제 개편 등이 대부분의 읍지에 반영되어 있다. 또한 쇄국 정책과 관련하여 진(鎭)의 재정 현황, 군대·군비 상황, 군 편제 변화와 운영 등을 기록하고 있는 『영종진지』가 주목되기도 한다.
『경기읍지』 가운데 『시흥읍지』에는 광명 지역의 옛 지명인 시흥의 군현 지도가 첫 머리에 그려져 있는데, 물길과 도로 표시가 선명하다. 본문은 건치 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방리(坊里), 호구(戶口), 형승(形勝), 성지(城池), 관직(官職), 산천(山川), 능묘(陵墓), 단묘(壇廟), 공해(公廨), 제언(堤堰), 창고(倉庫), 물산(物産), 교량(橋梁), 역원(驛院), 목장(牧場), 관애(關阨), 봉수(烽燧), 누정(樓亭), 제영(題詠), 사찰(寺刹), 고적(古蹟), 진보(鎭堡), 인물(人物), 전답(田畓), 균역청(均役廳), 진공(進貢), 군총(軍摠)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사례(事例)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이중 목장, 관애, 봉수, 진보는 수록 사항이 없다.
한편, 현재의 경기도 광명 지역과 관련된 정보가 수록된 항목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능묘 조에는 민회묘(愍懷墓)와 강석기 묘(姜碩期 墓), 이후원 묘(李厚源 墓), 정술조 묘(鄭述祚 墓)가 확인되나 소하동 일대에 위치한 이원익(李元翼)의 묘소는 누락되었다. 제언 조에는 아방리(阿方里)의 야자(夜字), 노온사리(老溫寺里)의 광자(光字), 광명리(光明里)의 중자(重字), 율일리(栗日里)의 시자(始字), 일직리(一直里)의 유목정보(柳木亭洑) 등이 소개되어 있는데, 제언의 대부분이 서면에 위치한 것이 특징이다. 교량 조에는 검암교(黔巖橋)·안양교(安養橋)·기탄교(歧灘橋) 등이 보이며, 누정 조에는 관감정(觀感亭)이 있는데, 이는 현재 소하동의 충현박물관 경내에 있는 관감당(觀感堂)을 일컫는 것으로, 당시에는 정자의 형태로 남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경기읍지』는 흥선대원군의 개혁 정치의 구체적인 내용이 경기도 각 군현에 어떤 방식으로 반영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참고할 수 있는 자료이다. 아울러 조선 후기 광명 지역의 인문지리적 특징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