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0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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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窓- |
영어의미역 | Dongchanggol Village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영수 |
[정의]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유래]
분성김씨 김계욱이 처음 정착하여 선조인 김응수를 기리고자 사당인 영모재를 지은 뒤 후손들이 사당 아래에 마을을 이루어 살면서 동쪽에 창을 내고 선조를 우러렀다 하여 동창골[東窓谷]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동창골은 조선 후기 분성김씨 11세손인 김계욱이 농사를 짓기 위해 경기도 김포군 양촌면에서 이주해 와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1914년 시흥군 서면 노온사리에 속하였고, 1964년 시흥군 서면 노온사3리에 속하였다. 1981년 광명시가 생기면서 광명시 노온사동에 속하였고 행정상으로는 광명시 학온동 4통에 속한다.
[자연환경]
동·남·북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서쪽이 트인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영모재를 감싸고 있는 산이 장구 모양이어서 장구산 또는 장군산이라고도 하는데 이 명칭은 김응수와 연관이 있다고 한다.
[현황]
동창골은 광복 직후만 해도 분성김씨 집성촌을 이루었으나 6·25전쟁 뒤로 토박이는 떠나고 외지인들이 살기 시작하였다. 2010년 현재 10여 가구가 살고 있으며, 이 중 분성김씨는 3가구이다. 현재 마을은 조립식 공장과 창고 등이 들어서면서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중이다. 농사를 짓는 주민들은 가끔씩 눈에 띄고 공장에서 일하거나 창고로 물류를 이동하는 차량들이 자주 눈에 띈다. 동창골과 윗장절리로 이어지는 동창골길에 서천사가 있었으나 지금은 비어 있다. 마을 입구 논곡로 변에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을 기념하여 장승을 세우고 아랫장절리 주민과 함께 장승제를 지내다가 1990년 폐지되었다. 해마다 음력 10월 10일에는 분성김씨 후손들이 시제를 지낸다.
문화 유적으로 영모재가 있다. 영모재는 1850년대에 세운 정면 3칸, 측면 1칸의 전통 사당 양식으로, 1940년 일제의 문화 말살이 자행되던 시기에도 전통 양식을 지켜 개축하였다. 1996년 신도비가 건립되었고, 2005년 1월 22일 영모재 및 분성군 김응수 가전 고문서 15점이 광명시 향토유적 제5호로 지정되었다.
김계욱의 후손들은 영모재를 지나 윗장절리로 넘어가는 산세가 뱀의 모양을 하고 영모재를 바라보는 형국이라 좋지 않다고 여겨 영모재 담을 높이고 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진다. 영모재를 관리하는 김우택의 집에는 8대조 김세존의 교지 등 30여 점의 고문서가 전해 온다. 김우택 부부는 마을 단위의 공동체 신앙이 없어진 뒤에도 칠월 칠석과 가을에 집 뒤의 바위에서 제를 올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