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00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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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年九月水害 |
영어의미역 | Natural flood damages in July, 1984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병권 |
[정의]
1984년 경기도 광명시를 비롯한 중부 지방에 쏟아진 폭우로 인해 발생한 수해.
[역사적 배경]
1984년까지 우리나라의 기상 관측 이래 최고의 홍수로서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의 한강 수위 12.26m, 1972년의 11.24m에 이어 1984년 11.03m를 기록함으로써 세 번째로 많은 비가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강의 첨두(尖頭) 시간과 광명시를 둘러싼 안양천 및 목감천의 첨두 시간이 불행 중 다행으로 24시간을 두고 빗겨감으로써 더 큰 수재를 발생시키지 않았으나, 이 비로 인해 서울특별시 강동구 성내동과 광명시를 포함한 경기 중부 및 강원 지방에서 피할 수 없는 수해를 만나게 되었다.
[발단]
1984년 9월 1일과 2일에 걸쳐 서울과 중부 및 강원 지방에 쏟아진 350㎜의 폭우로 인해 불어난 한강의 첨두 시간과 광명시를 관통하는 안양천·목감천 유역의 첨두 시간이 24시간을 두고 교차하면서 서해로 미처 배출되지 못해 한강의 역류가 시작되었다. 이로 인해 광명시 일원의 안양천·목감천 주변을 포함하여, 서울 지역의 저지대인 성내동·망원동 일대가 침수되면서 전국에 걸친 대규모 수해가 발생하였다.
[결과]
서울 지역에서 10만여 명, 광명시를 포함한 전국에 걸쳐 20만여 명의 이재민과 1,300여억 원의 재산상의 손실을 입었다. 당시 시의 기반을 건설하던 광명시 역시 가옥 침수 1,036동, 농경지 침수 168.5㏊, 농경지 매몰 4.6㏊, 도로 유실 2개소 20m, 제방 유실 1개소 36m의 피해를 입었으며, 인적 피해상황에 대해 기록된 자료는 확인되지 않는다.
[의의와 평가]
다소간의 이견이 있으나 1984년 9월 수해는 자연재해라기보다 치수 관리 시스템의 소홀로 발생된 인재에 가깝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또한 북한 적십자사의 수재 구호물자를 제공받음으로써 남북 대화가 재개되는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