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0028 |
---|---|
한자 | 宗敎 |
영어공식명칭 | Religion |
분야 | 종교/신종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덕묵 |
[정의]
경기도 광명시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개설]
광명 지역의 종교 역사는 도시화되기 이전 토박이 주민들이 관습적으로 믿어 왔던 토착 신앙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다. 20세기 초 초가집에서 시작된 개신교 교회, 1956년 소하동에 설립된 불교 사찰, 1975년 설립된 천주교 광명성당 등 지역에 인구가 늘어나면서 점차 다양한 종교들이 교세를 확장하였다. 1981년에는 통일교, 1986년에는 원불교, 1994년에는 한국SGI[창가학회] 등도 광명 지역에서 활동을 개시하였다.
[토착 신앙]
광명 지역은 과거 농촌 촌락으로 주민들은 주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광명 지역민은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마을을 지켜 주는 산을 향해 동제를 지내고 집에서는 가택의 최고 신인 성주와 터를 관장하는 터주, 그리고 재물을 모아 주는 대감, 아이를 점지하고 수명장수를 보살피는 삼신과 제석, 천신 및 집 안의 신들에게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물론 지금도 토박이 주민들은 이러한 지역 문화를 이어 가며 10월에는 고사 떡을 하여 이웃에게 돌린다. 또한 마을에서는 도당굿을 하고 집에서도 굿을 하며 토착 신앙에 기대었다.
광명 지역에는 ‘노온사’와 같은 절터는 존재하나 관련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사찰은 관악산과 삼성산 주변에 많이 있어 그곳을 다니는 사람도 있었으나 교통이 불편한 시절에는 도보로 자주 왕래하는 것은 힘들었다. 따라서 주민들이 실제 일상에서 의지했던 것은 토착 신앙이었다. 이러한 토착 신앙은 제도화된 종교가 아니라 개별적이고 산발적인 종교 행위로서, 만물에 영과 에너지가 있어 이것이 인간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관념과 구조 속에서 지역 생태에 적응하며 토속적 문화 현상으로 양식화되어 민간에서 관습적으로 전승되어 왔다.
[20세기 초 교회의 설립과 도시화 이후 늘어나는 교회]
개신교가 광명 지역 자연 마을에 들어와서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로, 교회의 역사는 1903년(고종 40) 5월 창립한 ‘광명교회’와 1905년 설립된 ‘하안교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초가집 사랑방에서 예배를 하다가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와 교인들이 협력하여 교회를 개척하였다.
이후 광명 지역에서는 광명교회와 하안교회가 반세기 이상 농촌 촌락을 배경으로 많지 않은 신도를 유지하며 존재해 왔다. 1960년대 점차 인구가 늘어나고 1970년대 이후에는 서울의 구로공단 배후지로서의 기능 등으로 인구 유입이 급증하였고, 이와 비례하여 교회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1981년 광명시청 개청 당시에는 66개 교회가 있었다고 하며, 1991년 소하2동에는 19개의 교회가 있었는데 2001년에는 35개로 늘어났다. 광명7동도 택지 개발로 인해 인구가 증가하면서 기존 9개의 교회가 25개로 늘어났다. 택지 개발과 인구 유입이 교회 수 증대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2021년 현재 광명시에는 340여 개의 교회가 있다. 교회가 늘어나면서 공동의 활동을 위한 광명시교회연합회, 기독교교회협의회도 생겨났다.
[도시화와 함께 증가해 온 사찰과 성당]
광명 지역에는 ‘노온사’, ‘절골’ 같은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명은 남아 있으나 1956년 이전까지는 사찰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는다. 도시화가 진행되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점차 사찰이 세워지고 그 수가 늘어났다. 기록에 보이는 광명시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은 1956년 등록된 소하1동에 있던 운암사이다. 1982년 발간된 『광명통계연보』에는 광명 지역에 13개 사찰, 4,247명의 신도가 있다고 나온다. 2021년 현재 광명시에는 20여 개 사찰이 있다. 불교 관련 단체로는 1982년 설립된 불교연합회가 있다. 당시 청룡사, 반야정사, 성불사, 관음사, 월성사 등이 주축이 되어 만들었다. 현재 광명시에서 규모가 큰 사찰로는 1991년 창건된 금강정사이다. 2005년 설월리 마을 뒤 구름산 기슭으로 옮긴 금강정사는 현재 템플 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천주교는 로마 가톨릭교회로서 우리나라에 전래된 후 ‘천주교’ 혹은 ‘가톨릭’이라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조선 후기에는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서양의 학문과 종교의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서양에 관심을 가진 학자들에 의해서 연구되면서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생겨났다. 1784년(정조 8) 북경에서 영세를 받은 이승훈(李承薰)이 돌아와 이벽(李檗), 정약전(丁若銓) 등과 교회를 만들었다. 당시 유교를 고수하려는 조선 정부의 박해를 받기도 하였지만 안동김씨 세도정치 때에는 묵인되었고 외국의 선교사들이 입국하였다.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각지에 성당이 생겨나며 교인도 증가하였지만 광명 지역에서는 도시화가 진척되던 1975년 광명4동에 광명성당이 설립되었다. 이후 1982년 철산4동에 철산성당이 들어서고, 1990년 소하2동에 소하성당, 1996년 하안동에 하안성당, 1998년 철산2동에 광북성당, 2008년에는 광명동에 광문성당이 세워졌다.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광명시]
오늘날 광명 지역에는 개신교, 천주교, 불교 외에도 원불교, 통일교, 한국SGI[창가학회]도 활동하고 있다. 원불교는 1986년 10월 23일 철산3동 철산주공아파트 1214동 708호에서 개봉교당 이묘신 교무가 처음 목요 출장 법회를 열면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1988년 철산3동 청덕빌딩 4층으로 옮겨 출장 법회를 한 후 2000년에는 철산2동에 교당을 이전하여 활동하고 있다. 매주 일요일과 월요일, 매월 초하루에 법회를 하고 있다.
통일교는 하안동에 교회가 있으며 1981년 세계통일가정연합 광명가정교회라는 명칭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일본에서 분화한 한국SGI[창가학회]는 1994년 광명문화회관을 개관하여 활동하고 있다. 법당은 철산2동에 있고 『화광신문』을 발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