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0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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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光明市 |
영어공식명칭 | Gwangmyeong City|Gwangmyeong-s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양철원 |
[정의]
대한민국 경기도 중서부에 있는 시.
[자연·인문 환경]
광명시는 한반도 중부에 있는 기초자치단체로 경기도 중서부에 자리한다. 북쪽은 서울특별시 구로구 개봉동과 천왕동, 구로동, 동쪽으로는 서울특별시 금천구 가산동과 시흥동, 남동쪽과 남서쪽은 경기도 안양시, 시흥시와 접한다. 광명시의 동단인 소하1동과 서단인 옥길동 사이 거리는 6.55㎞, 북단인 철산1동과 남단인 가학동 사이 거리는 10.32㎞이다. 광명시의 경도와 위도는 동단 126° 55′ 00″, 서단 126° 49′ 09″, 남위 37° 23′ 28″, 북위 37° 29′ 54″이다. 도시 북쪽부터 남쪽으로 도덕산[201m], 구름산[240m], 가학산[220m], 서독산[180m] 등 저산성 산맥이 도시를 동서로 분리하고 있다.
2019년 연평균 기온은 13.5℃였으며 가장 더운 8월의 극점 최고 온도는 36.8℃, 가장 추웠던 12월의 극점 최저 온도는 -10.9℃였다. 연중 5월부터 9월까지 30℃ 이상의 최고 기온이 나타나고 11월부터 2월까지 영하의 최저 기온을 기록한다. 연평균 강수량은 제일 적었던 2015년의 792㎜에서 가장 많았던 1990년의 2,043.6㎜에 이르기까지 편차가 있다. 주경사면은 동서 방향으로 동측은 안양천, 서측은 목감천(牧甘川)이 북류하여 한강으로 유입된다. 표고 70m 이하가 76%인 29.27㎢, 경사 20% 이하가 약 70%로 가용 면적은 많으나 대부분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어 실제 가용 면적은 약 7.33㎢이다. 광명시의 면적은 38.50㎢로 경기도 면적 1만 183㎢의 0.37%를 차지하고 있다. 일반 지역이 15.1㎢, 개발제한구역 14.5㎢, 특별관리지역 8.9㎢이다.
광명시의 동들 가운데 면적이 가장 넓은 지역은 광명시 전체 면적의 33.5%인 12.89㎢를 차지하고 있는 학온동이며, 가장 좁은 지역은 광명2동으로 0.73%인 0.28㎢를 차지하고 있다. 두 번째로 면적이 넓은 지역은 18.65%인 7.18㎢를 차지하고 있는 소하2동이다. 광명시 남단의 학온동과 소하2동이 광명시 전체 면적의 2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광명시 인구는 2021년 7월 말 현재 12만 450가구, 29만 5560명[남 14만 5781명, 여 14만 8779명]이다. 철산동 지역에서는 철산3동이 3만 4656명으로, 광명동 지역에서는 광명7동이 2만 1103명으로, 하안동 지역에서는 하안1동이 2만 6003명으로 가장 많은 시민이 살고 있으며 소하동 지역은 가장 많은 인구가 살고 있는 소하2동 5만758명을 비롯하여 소하1동 3만 1815명이 살고 있다. 반면 농촌 지역인 학온동은 가장 넓은 지역임에도 2,153명의 인구를 기록하고 있다. 활발한 뉴타운 사업 등으로 지역별 인구 변동이 심한데 특히 광명1동 193명, 광명2동 3,301명으로 최근의 재개발 현상을 보여 주고 있다. 소하2동 지역은 2021년 12월 소하1동과 일직동으로 분리될 예정이다. 주택 수는 11만 7883호이며 아파트 63%, 연립 다세대 20%, 단독, 다가구 17%를 차지한다. 최근 인구가 계속 감소하고 있으나 뉴타운 개발 및 각종 지역 개발 사업이 완료되면 36만 명 규모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내의 주요 교통로는 동쪽 지역에는 서울특별시 구로구 궁동에서 출발하여 경기도 안양시 박달동에 이르며 시를 남북으로 달리는 오리로와 안양천 서측을 달리는 안양천로가 있다. 서쪽 지역에는 개봉교부터 시흥시 논곡삼거리에 이르는 광명로가 있다. 동서축으로는 시흥시 금이동에서 하안동에 이르는 금하로, 시흥 범박동에서 안양천에 이르는 범안로, 학온동에서 금천구 독산동에 이르는 서독로가 있다. 시 외곽으로 연결된 도로는 서해안고속도로로 나가는 광명역 나들목[IC], 수원광명고속도로 소하 나들목,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 광명 나들목과 연결되어 있다. 일직동에는 KTX 광명역이 있으며 지하철역으로는 서울 7호선 철산역과 광명사거리역이 있다.
[역사]
철산동과 가학동 등지에서 고인돌 유적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광명 지역에는 적어도 기원전 500년쯤부터 사람들이 정주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철산동 고인돌은 탁자형이며 가학동 고인돌군은 탁자형과 개석형이 섞여 있다. 오랜 세월을 두고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광명 지역에서 살았음을 알 수 있다.
한성 백제시대 이후 광명 지역은 고구려 장수왕의 남정(南征)[475]으로 고구려의 영토가 되며 잉벌노현(仍伐奴縣)에 속하였다. 당시 잉벌노현은 광명 지역을 비롯하여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의 석수동과 박달동, 서울특별시 관악구의 봉천동, 신림동, 금천구 독산동, 구로구의 가리봉동, 시흥동, 영등포구의 당산동, 대림동, 문래동, 신길동, 양평동, 동작구의 상도동, 대방동, 신대방동 일대를 포함하였다. 553년(진흥왕 14)에는 한강 유역을 점령한 신라의 영토가 되었으며 신라 삼국 통일 후인 757년(경덕왕 16)에는 곡양현(穀壤縣)으로 개칭되고 율진군(栗津郡)에 속하였다.
고려시대인 940년(태조 23)에는 곡양현을 금주현(衿州縣)으로 개칭하였으며 조선시대인 1413년(태종 13) 팔도제(八道制)를 단행하며 금주를 금천현(衿川縣)으로 개칭하였다. 1795년(정조 19)에는 정조(正祖)의 화성 능행과 함께 금천현을 시흥현(始興縣)으로 개칭하였는데 본래 시흥이라는 이름은 고려 성종(成宗) 대 금주현의 별호였다. 1895년(고종 32)에는 시흥현이 시흥군(始興郡)으로 승격되어 인천부(仁川府)에 속하였고 1896년(고종 33)에 다시 경기도에 편제되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오늘날 광명 지역에 속한 각 마을의 이름이 문헌상에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광명리(光明里), 철산리(鐵山里), 소하리(所下里), 일직리(一直里) 등이었다. 시흥군 전체 영역은 잉벌노현 시기와 대체적으로 비슷하며, 광명 지역은 시흥현의 치소가 있던 금천구 시흥동 지역에서 안양천을 넘어 서쪽에 위치한 서면과 서면에서 다시 시 중앙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구름산과 도덕산 너머의 남면으로 나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는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시흥군, 안산군, 과천군 3개 군이 시흥군으로 흡수·통합되었으며 9개 면(面)의 83개 이(里)로 편제되는 과정에서 시흥군의 남면과 서면에 속하였던 광명 지역은 서면으로 재편되었다. 이 과정에서 서면 소하리와 가리대리가 소하리로, 서면 사성리와 철산리가 철산리로, 서면의 하평리, 안현리, 율일리가 하안리로, 서면의 자경리, 일직리가 일직리로 각각 통합 개편되었다. 남면의 경우 광명리와 광화대리가 서면 광명리로, 노온사리와 아방리가 노온사리로, 가학리와 유등리가 가학리로 각각 통합 개편되었다. 그리고 면소재지는 소하리에 설치되어 이후 서면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1970년 6월 10일에는 시흥군 조례 제199호에 의해 서면 광명리와 철산리의 2개 법정리를 관할 구역으로 하는 서면 광명출장소가 설치되었다. 인근 구로공단의 개설로 철산리 지역에 많은 인구가 유입되고 개봉 지구 개발 사업으로 현재의 광명사거리 일원이 개발되면서 행정 수요가 늘어 생긴 현상이었다. 1974년 6월 1일에는 시흥군 조례 제401호에 따라 서면 광명출장소가 시흥군 광명출장소로 승격되었고 1976년 4월 20일에는 7개의 분소(分所)가 설치되었다. 오늘날 광명7동의 원광명마을을 삼리라고 부르는 것도 이 시기에 편제된 행정구역의 유습이다.
지속적으로 인구가 유입되면서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9409호로 서면이 소하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81년 7월 1일 법률 제3425호에 의해 소하읍과 광명출장소가 광명시로 승격되어 시흥군에서 분리되었다. 이어 1983년 2월 15일 대통령령 제11027호에 따라 시흥군 소래읍 옥길1리와 옥길3리가 광명시의 광명6동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1990년 5월 20일 광명시 조례 제601호로 하안1동이 하안1동과 하안2동으로 분동되고, 1990년 12월 1일 광명시 조례 제620호로 하안2동이 하안2동과 하안3동으로 분동되었으며, 1995년 3월 6일 광명시 조례 제864호로 하안2동이 하안2동과 하안4동으로 분동되었다. 2021년 1월 1일 현재 광명시는 8개 법정동, 18개 행정동의 507통 3,241반으로 편제되어 있다.
조선 숙종(肅宗) 때 구름산 자락에 소현 세자 빈인 민회빈 강씨(愍懷嬪姜氏)의 묘소인 영회원을 조성하고 1798년(정조 22) 정조의 화성 능행 시 영회원 치제가 행해지기도 하였다. 1896년(고종 33) 지방관 및 향리의 탐학에 맞선 제1차 시흥농민봉기가 광명시 지역민을 중심으로 발발하였으며 1904년(고종 41) 일제의 강압적인 경부선 철도 역부 모집에 항거한 제2차 시흥농민봉기도 역시 광명 지역민을 중심으로 일어났으며 희생 또한 컸다.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에도 적극 동참하여 3월 27일~28일 이틀간 소하리와 노온사리를 무대로 만세운동을 벌였다. 1960년대 이후 수도권이 팽창하면서 서울과 인접한 광명리 지역과 철산리 지역에 많은 사람이 거주하게 되었으며 1968년부터 시작된 개봉동 20만 평[약 66만 1157㎡] 개발 계획과 1978년 철산리 개발 계획으로 현대적인 도시로 변모하게 되었다. 1980년대 후반 하안 지구 아파트 건설, 2004년 KTX 광명역 개통과 광명역세권 개발로 오늘날 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지방 자치]
1991년 부활하여 1995년 직접 선거로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방자치선거 결과 민선 1대 시장으로 전재희, 2~3대 백재현, 4대 이효선, 5~6대 양기대, 7대 박승원 시장이 선출되었다. 도의원은 4명, 시의원은 12명을 뽑는다.
[교육]
광명시에는 경기도 교육청 산하 경기도 광명교육지원청이 설치되어 있다. 미래를 향해 함께 도전하고 성장하는 해오름 광명교육이라는 비전을 달성하기 위하여 지역과 연계한 학생 성장 중심의 온·오프라인 학습 지원, 마을 교육 생태계와 함께 만드는 해오름 미래 교육 재구조화, 자율과 책임의 교육 참여를 통한 교육 자치 실천 확대 등의 목표를 수립하여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2020년 12월 기준 광명시에는 44개의 유치원이 있고 총 학급 수는 199개이며 학생 수는 3,040명이다.
초등학교는 25개, 총 학급 수는 707개, 학생 수는 1만 7318명이다. 초등학교 중 분교장이나 사립학교는 없다. 학급 수가 40개가 넘는 초등학교도 다수 있으나 초미니 학교도 2개교가 있다. 광명시의 서부 지역에 속하는 노온사동 온신초등학교는 전교생이 6학급에 93명이고, 남부 지역에 속하는 가학동의 안서초등학교는 6학급 67명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중학교는 공립 12개교, 총 학급 수는 322개, 학생 수는 8,912명이다. 광명시 중학교들은 자기주도 학습을 정착하기 위해 방과 후 학교를 운영하면서 합리적이고 탐구적이며 자율적인 학습 태도를 형성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고등학교는 국공립 7개교, 사립 1개교, 특성화고 2개교, 자율고 1개교 등 총 11개이며, 총 학급 수는 353개, 학생 수는 8,371명이다. 이 중 공립학교는 9개교 311학급에 7,495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고, 사립학교는 2개교 42학급에 876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다.
[문화·예술]
1989년 개관한 광명시민회관을 중심으로 공연과 전시 활동 등이 이어지고 있으며 다소 부족했던 시설은 2020년 광명극장이 개관하며 수요를 받쳐 주고 있다. 시립예술단은 시립합창단, 소년소녀합창단, 시립농악단 3개 단체를 운영 중이다. 민간 문화·예술 단체로는 1991년 설립된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광명시지부, 1992년 설립된 광명문화원이 있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광명시지부는 한국미술협회 광명지부, 한국국악협회 광명지부, 한국문인협회 광명지부, 한국음악협회 광명지부, 한국연극협회 광명지부, 한국연예인협회 광명지부, 한국무용협회 광명시지부, 한국사진작가협회 광명지부, 한국영화인총연합회 광명지부 등 9개 지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매년 구름산예술제를 주관한다. 광명문화원은 지역 고유의 문화 창달과 시민 문화 활동을 장려할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로 하안동에 원사가 있으며 오리문화제를 주관한다.
광명시의 지정 문화재로는 사적 제357호 광명 영회원, 보물 제1435호 「이원익 초상」을 비롯한 이원익 선생 관련 유물,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0호인 광명농악, 광명시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된 철산동 지석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