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충효동에 있는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까지 분청사기와 백자를 굽던 가마터. 고려시대 중앙에 진상하던 최고급 상감청자의 주생산지가 강진이었다면, 조선시대 최고급 분청사기의 주생산지는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충효동 일대의 무등산 자락이었다. 금곡동·충효동 일대가 분청사기 가마터로 적격이었던 이유는 질 좋은 흙과 풍부한 연료 때문이었다. 가마터 위쪽의 고개 이름이 '백토재'로...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김덕령의 출생과 관련된 이야기. 김덕령(金德齡)[1567~1596]은 광주광역시 충효동에 태어난 조선시대 인물이다. 호랑이가 밭에서 일하고 있는 김덕령 어머니를 잡아먹고 사람으로 환생하려다가 신의 방해로 실패한 이야기이다....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김덕령의 용력에 관한 이야기. 김덕령(金德齡)[1567~1596]은 광주광역시 충효동에서 태어난 조선시대 실존인물로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켰다. 김덕령이 열다섯 살 때에 글공부를 위해서 서봉사에 갔다가 호랑이를 잡은 이야기이다....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김덕령의 태몽과 관련된 이야기. 김덕령(金德齡)[1567~1596]은 전라도 광주 충효동에 태어난 조선 시대 실존 인물이다. 김덕령의 어머니가 호랑이꿈을 꾸고 김덕령을 낳았다는 이야기이다....
전라도 광주 출신의 조선 후기 학자 김만식의 유고 문집. 김만식(金晩植)[1845~1922]의 자는 사성(司晟), 호는 난실(蘭室),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충무공(忠壯公) 김덕령(金德齡)[1567~1596]의 후손으로 광주광역시 충효동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후학을 지도하며 평생을 살았다. 1890년(고종 27)에는 친족들과 함께 김덕령의 넋을 위로하고 기리기 위하여 광주광역시...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김덕령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 광주광역시 충효동의 충장사가 자리 잡은 고개를 배재 혹은 이치라고 불렀는데, 이 자리에 김덕령 집안의 묘가 13기가 있다. 이 자리가 장군묘의 명당자리여서 김덕령과 같은 명장이 태어났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