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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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흑석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전의이씨 재각. 경장각은 조선 인조 대 문신인 이신의(李愼儀)[1551~1627]를 배양하는 곳이다. 이신의의 본관은 전의이며 자는 경칙이고 호는 석탄(石灘)이다. 1566년(명종 21)부터 민순의 문하에서 학업을 받아 문장을 배웠으며, 도학과 절의 문장을 모두 갖춘 학자로 『석탄집』을 남겼다. 정묘호란 때 왕을 대동하여 강화도로 가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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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의병장. 고부민(高傅敏)[1577~1642]의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무숙(務叔), 호는 탄음(灘陰)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고중영(高仲英)이며 할아버지는 고경조(高敬祖)이다. 아버지는 고성후(高成厚)이고, 어머니는 박성정(朴星精)의 딸 함양박씨(咸陽朴氏)이다. 부인은 김온덕(金蘊德)의 딸 광산김씨(光山金氏)이고, 아들은 고두경(高斗經)이다. 딸은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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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광주를 본관으로 하는 광주정씨 일가의 문집. 『광주정씨세고(光州鄭氏世稿)』는 정두원과 정두경, 정시림 등 광주정씨 일가의 유사(遺事)와 시문을 엮은 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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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에서 전해 내려오는 조선 후기 인조 때의 공신 정충신의 비범한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 조선 후기 인조(仁祖)[재위 1623~1649] 때의 공신인 정충신(鄭忠信)[1576~1636]의 어린 시절의 비범함을 알 수 있는 세 가지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들은 당시 광주목사이던 권율 장군과 관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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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에 있는 오호석과 송시열을 모신 사우. 대명사는 조선시대 중기 문신인 오호석(吳孝錫)[1620~1696]과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을 모신 사우이다. 오호석은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청에 항복을 하자 1637년[인조 15] 관직을 버리고 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 가마마을 뒤편 산으로 와서 영사재(永思齋)를 짓고, 성리학을 연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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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도 광주 지역에서 출생한 문인 이정신(李鼎新)의 시문집. 『묵은유고(黙隱遺稿)』는 17세기 전라도 광주 지역에서 활동하며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켜 활동한 문인 이정신의 행적과 시문을 엮은 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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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도 광주 지역 출신 문신 김여옥(金汝鈺)[1596~1662]의 시문집. 『미산공실기』는 전라도 광주 창교리(滄橋里)에서 출생한 김여옥의 시문을 엮은 문집으로, 부친 김우급(金友伋)의 문집 『추담집(秋潭集)』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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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무신. 박정지(朴廷芝)[?~?]의 본관은 함양(咸陽)이며, 5대조는 청백리(淸白吏) 익찬(翊贊) 박수지(朴遂智)이다. 고조할아버지는 박이량(朴以良)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홍문관전한(弘文館典翰) 박명손(朴命孫)이다. 아버지는 박한(朴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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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금호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사우. 병천사(秉天祠)는 1924년 광주의 부호였던 붕남(鵬南) 지응현(池應鉉)과 광주 유지들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극복하고 애국정신을 선양하려는 취지에서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의재(毅齋) 지용기(池湧奇), 금남(錦南) 정충신(鄭忠信), 철산(鐵山) 지여해(池汝海), 표곡(豹谷) 지계최(池繼崔)를 제향하기 위하여 19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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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의병으로 활약한 정지준이 무등산을 유람하고 쓴 한시. 서석산은 무등산의 별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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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문인인 유희경이 무등산을 등반하고 쓴 한시. 「서석산(瑞石山)」을 지은 유희경(劉希慶)[1545~1636]의 본관은 강화(江華), 자는 응길(應吉), 호는 촌은(村隱)이다. 박순(朴淳)에게서 당시(唐詩)를 배웠다.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싸운 공으로 포상과 교지를 받았다. 광해군 때 이이첨(李爾瞻)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서인(庶人)으로 강등하고자 유희경에게 상소를 올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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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에 있었던 인조의 넷째아들 용성대군의 태를 묻은 곳. 태실(胎室)이란 왕실에서 자손을 출산하면 그 태(胎)를 봉안하는 곳을 말하며, 태를 묻은 산을 태봉산이라 불렀다. 예로부터 태는 태아의 생명력을 부여한 것이라고 인정하여 태아가 출산된 뒤에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보관하였다. 태를 보관하는 방법도 신분의 귀천이나 계급의 높고 낮음에 따라 달랐다.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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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광주광역시에서 출생한 문인 이정태의 시문집. 『야은유고(野隱遺稿)』는 17세기에 전라도 광주 지역에 거주하며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켜 활약한 문인 이정태의 행적과 시문을 엮은 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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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무신. 양경매(梁景梅)[?~?]의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찬여(燦汝)이다. 전직(殿直) 양봉(梁)의 후손이다. 이 외에 양경매의 구체적인 가계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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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이괄의 난·정묘호란 때 활동한 광주 출신의 의병장. 유평(柳玶)[1577~1645]의 본관은 서산(瑞山), 자는 화보(和甫), 호는 송암(松菴)이다. 할아버지는 승지(承旨) 유사(柳泗)이며, 아버지는 별제(別提) 유경진(柳景進)이고, 외할아버지는 을사명현(乙巳名賢) 임형수(林亨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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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두암동에 있는 조선 후기 김해김씨 사당. 장열사는 광주광역시 두암동에 자리한 김해김씨 사당으로 김유신(金庾信)[595~673]을 배향하고 있다. 1850년에 지역 유림들이 우치동 죽방촌에 사우를 건립하여 향사하다가 훼철된 이후 1906년에 복원되었다. 본래 조선의 문신이자 학자 김일손(金馹孫)[1464~1498]과 인조 때 안주목사와 황주목사를 지낸 망헌(望軒)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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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 있는 조선시대 무신 전상의 장군의 무덤. 전상의(全尙毅)[1575~1627] 의 본관은 천안(天安)이며, 지금의 광주광역시 서구 구동에서 전용(全蓉)의 아들로 태어났다. 1603년(선조 36)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으로 벼슬길에 나아갔다. 1617년(광해군 9) 오윤겸과 함께 회답사로 일본에 건너가 임진왜란·정유재란 때 끌려간 동포 1500여 명을 귀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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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정금남에 관한 이야기. 조선 인조(仁祖)[재위 1623~1649] 때의 충신인 정금남(鄭錦南)[1576~1636]의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이다. 정금남의 이야기와 수수께끼를 푼 아이 이야기와 이여송(李如松)[1549~1598] 장군의 이야기 등이 결합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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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 일본에 의하여 국권을 강탈당할 때까지의 전라도 광주 지역의 역사. ‘광주’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인 940년(태조 23) 처음 사용된 이후 해양·익주·화평·무진으로 불리었으며, 목(牧)·부(府)·주(州)·현(縣) 등 등급의 변화가 빈번하였다. 1373년(공민왕 22) 광주목이 되면서 목사가 파견되는 큰 고을이 되었는데, ‘광주목’은 조선 초에도 그대로 유지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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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활동한 광주 출신의 의병장. 최후립(崔厚立)[1544~1592]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여중(汝中), 호는 야정(野亭),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 최광위(崔光位)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도사(都事) 최종호(崔宗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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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태봉(胎峯)에 관한 이야기. 광주광역시에 신안동과 학운동에 2개의 태봉이 있었다. 그중 신안동 태봉에 관한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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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에 있었던 산. 태봉산은 신안동에 있었던 높이 52m의 작은 산으로, 인조의 아들 용성대군의 태를 묻었던 산이다. 태봉산을 헐어내어 경양방죽을 메우는 데 사용하였고 지금은 태봉산유래비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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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있었던 태봉산에 대한 풍수 해석. 태봉산은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일원에 있던 작은 야산[똑뫼]으로 용의 ‘여의주’ 또는 조산비보(造山裨補)로 인식하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헐려 흔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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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태봉산에 관한 이야기. 옛날 사람들은 전라도 광주의 지형을 이무기가 용이 되어 여의주를 입에 물고 하늘에 오르려는 형국이라 했는데, 그 여의주가 바로 태봉산이다. 태봉산이 태봉이라 불리게 된 것은 인조의 왕자의 태를 묻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968년에 지역 구획정리 사업으로 태봉산이 없어졌는데, 당시 마을의 노인들은 이러한 광주의 지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