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호선(金好善)[1911~2001]은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읍 누문정 125번지[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누문동]에서 태어났다. 『노동자신문』을 창간하고 인쇄·배포하여 항일 의식과 사회주의 사상을 보급하였다. 또한, 1931년 에는 전남노농협의회(全南勞農協議會)를 조직하였다. 1932년 2월 3.1운동 기념일에 사용할 격문을 제작하여 배포를...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여성 독립운동가. 남협협(南俠俠)[1912~?]은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수기옥정(須奇屋町)[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에서 태어났다. 1928년 11월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지금의 전남여자고등학교]에 재학 중 비밀결사 소녀회(少女會)에 가입하였으며, 1930년 1월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옥고를 치렀다....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노석정(盧錫正)[1892~1967)은 전라도 광주목 석제면 일곡촌[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서 태어났다. '달리는 기준(基俊)[또는 基準]'이라고도 불렸다.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국내로 잠입하여 전라남도 광주, 화순, 곡성, 담양, 보성 등지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펼쳤다. 1921년 광주지방법원...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노석중(盧錫中)[1875~1954]은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수기옥정[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에서 태어났다. '달리는 석중(錫仲)'이라고도 불렸다. 조선민족대동단(朝鮮民族大同團)[대동단]에 가입하여 조선 독립운동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혀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문동길(文東吉)[1900~1997]은 전라남도 광주군 석곡면 청풍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청풍동]에서 태어났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밀고로 일본 경찰에게 붙잡혔으며, 광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등의 죄목으로 징역 8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민성숙(閔成淑)[1890~?]은 전라남도 광주군 서방면 중흥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중흥동]에서 태어났다. 광주 3.10만세운동에 참여하여 "독립 만세"를 외치며 행진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하다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여성 독립운동가. 박계남(朴繼男)[1910~1980]은 전라남도 광주군 명치정(明治町)[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1가]에서 태어났다.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지금의 전남여자고등학교]에 재학 중 소녀회(少女會)에 가입하였으며, 1930년 1월에 벌어진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하였다가 9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노백(朴魯珀)[1903~1958]은 전라남도 광주군 하남면 장수리[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장수동]에서 태어났다. 박형채(朴炯採)[또는 朴炯埰, 朴炯采]라고도 불렸다.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 입학하였으며,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에 가입하였다. 1928년 일본 도쿄 요츠야구[四谷區] 신주쿠[新宿] 소재...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봉석(朴奉石)[1885~1910]은 전라도 광주목 도천면 수박치(水朴峙)에서 태어났다. 1908년 안규홍(安圭洪) 의병부대에 들어가 포군(砲軍)의 직책을 가지고 전라남도 곳곳에서 무장투쟁을 벌였다. 1909년 일본군에게 붙잡혔고, 1910년경 교수형으로 사망하였다....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상기(朴相基)[1922~2002]는 전라남도 광주군 서방면[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동명동 228번지]에서 태어났으며, 거주지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이었다. 1943년 한국광복군에 입대한 뒤 지하공작원으로 활동하였으며, 기관지 『빛』의 편집을 담당하였다....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세영(朴世英)[1910~1943)은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읍 양림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서 태어났다. 광주고등보통학교[지금의 광주제일고등학교] 재학 중에 동맹 휴교를 단행하였고, 지속적인 휴교 파동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오봉(朴五鳳)[1904~1949]은 전라남도 광주군 기례방면[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5가]에서 태어났다. 1929년 11월 조선인 학생에 대한 편파적이고 가혹한 처사에 반항할 목적으로 선전물을 만들어 전라남도 광주에 있는 학생들에게 살포하였고, 1929년 12월 제2차 시위를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여성 독립운동가. 박옥련(朴玉連)[1914~2004]은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사정(社町)[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사직동]에서 태어났다.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지금의 전남여자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8년 11월 초순경 소녀회(小女會)를 조직하였으며,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 때에는 부상당한 학생들을 치료하였다. 1930년 일본 경찰...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박원영(朴源永)[?~1896]은 전라도 광주목에서 태어났다. 자는 주옥(周玉), 호는 포류재(蒲柳齋)다. 기우만(奇宇萬)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호남 일대에서 활약하였으며, 광주향교(光州鄕校)의 재임(齋任)으로 광주향교를 끝까지 지키다가 의병을 진압하러 온 진위대(鎭衛隊)에 의해 체포되었다....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여성 독립운동가. 박채희(朴采熙)[1913~1947]는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향사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서동]에서 태어났다. 1929년 5월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지금의 전남여자고등학교]에 재학 중 비밀결사 소녀회(少女會)에 가입하였으며,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하였다가 광주경찰서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여성 독립운동가. 박현숙(朴賢淑)[1914~1981]은 전라남도 광주군 송정면 소촌리[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에서 태어났으며, 달리 부르는 명칭은 박정숙(朴貞淑)이다. 1929년 5월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지금의 전남여자고등학교]에 재학 중 비밀결사 소녀회(少女會)에 가입하였으며,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일본 경...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범윤두(范潤斗)[1891~1958)는 전라남도 광주군 우치면 생룡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용전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광주만세운동에 사용할 「독립선언서」, 경고문, 「독립가(獨立歌)」 등을 인쇄하는 일에 동참하였고, 장기간에 걸쳐 피신 생활을 하다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재익(徐在益)[1905~1943]은 전라남도 광주군 대촌면 칠석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대촌동]에서 태어났다. '달리는 서재옥(徐在玉)'으로도 불렸다. 광주청년동맹(光州靑年同盟)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조선청년동맹(朝鮮靑年同盟)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청년 계몽 및 민족 문제 해결을 위하여 활동하다가 1931년 5월 체포되어 옥고를...
-
대한제국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의병. 송학묵(宋學黙)[1871~1910]은 전라도 광주목[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본촌동]에서 태어났다. 자는 자화(子化)이고 본관은 홍주(洪州)이다. 김동수(金東洙) 의병부대에 소속되어 전라남도 광주를 비롯한 인근 5개 군을 넘나들며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일제에 체포되어 교수형을 받았다....
-
대한제국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의병. 신덕균(申德均)[1878~1908]은 전라남도 광주목[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각화동]에서 태어났다. 자는 정효(正孝) 또는 몽암(蒙庵)이라 하였고, '달리는 신덕순(申德淳), 신정효(申正孝)'라고도 불렸다. 고광순(高光洵) 의병부대 참모로 활약하였으며, 고광순 의병부대가 무너지자 가산을 팔아 무기를 갖추고 의병 100여 명을 모아 재기하여 운...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의병. 양동골(梁東骨)[1885~1961]은 전라도 광주목[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효죽동]에서 태어났다. '달리는 양서현(梁瑞賢) 또는 양서영(梁瑞永)'이라고도 불렸다. 양진여(梁振汝) 의병부대에 입대하여 전라남도 광주와 담양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벌이던 중 일본군 광주수비대에게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여성 독립운동가. 양순희(梁順喜)[1901~?]는 전라남도 광주군 서방면 중흥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중흥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전라남도 광주에서 전개된 3.10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한선(劉漢先)[1876~1950]은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 양림리[현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서 태어났다. '달리는 유한선(劉漢鮮)'이라고도 하였다. 전라남도 지역에 국민회(國民會)를 조직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후원과 보조금을 보내는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의병. 윤영기(尹永淇)[1871~1971]은 전라도 광주목[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효덕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함안(咸安)이고, 자는 경안(京安)이며, 호는 정재(貞齋)이다. 영기(泳琪) 또는 영기(泳祺)라고 한다. 고광순(高光洵) 의병부대의 호군(護軍)에 임명되어 전라남도 일원에서 활동하였으며, 고광순 의병부대가 무너지자 살아남은 병사들을 인솔해...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해병(尹海炳)[1906~1967]은 전라남도 광주군 송정면 송정리[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에서 태어났다. 송정공립보통학교를 거쳐 송정중학원에 입학하였으나, 병약하여 중도 퇴학하였다.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인 이경채(李景采)와 박병하(朴邴夏)의 항일 활동을 적극 지원하다 일본 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강오(李康午)[1911~?]는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향사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서동]에서 태어났다. 광주고등보통학교[지금의 광주제일고등학교] 동교생 이경채(李景采)의 퇴학에 항의하는 동맹 휴교를 주도하고, 민족 차별 교육 등에 반대하는 결의문을 배포하였으며, 맹휴 대열에서 이탈한 학생의 배신 행위를 징계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강후(李康厚)[1912~1978]는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향사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서동]에서 태어났다.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 2학년 재학 중 동교생 이경채(李敬采)의 석방을 요구하는 동맹 휴교에 참여하고, 맹휴 이탈자 응징에 참여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경채(李景采)[1910~1978]는 전라남도 광주군 송정면 송정리[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에서 태어났다.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 재학 시절 '조선독립선언문'이라는 제목의 격문을 전라남도 광주 곳곳에 붙였다가 학교로부터 퇴학 처분을 받았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학생운동을 계속하다가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였다. 중국에서 군사훈...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의병. 이기섭(李基燮)[1883~?]의 출생 연도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이기섭이 체포될 당시인 1909년 5월 7일 광주경찰서에서 남긴 '폭도체포의 건'[광경비수(光警秘收) 제385호] 문건에 26세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1883년생으로 추정할 뿐이다. 아울러 이 문서에는 이기섭의 본적 또한 전라남도 광주군 서양면 경양촌(景陽村)으로 나온다. 이...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남채(李南彩)[1899~?]는 전라남도 광주군 서방면 중흥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중흥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0일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