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광역시 북구 전남대학교에 있는 2기의 돌로 만들어진 조선시대 장승. 광주 서원문 밖 석장승은 광주 동쪽을 지키는 수호신의 일종으로 '광주읍성 동문 장승'으로 불리어 왔다. 원래의 위치는 광주경찰서에서 옛 광주교도소 쪽으로 들어가는 길 양쪽에 허리가 반쯤 흙에 묻힌 채 서 있었다. 1967년 도로 확장공사[지금의 제봉로] 때 발견되어 전남대학교로 옮겼다. 광주읍성 밖 공북루(拱北...
-
광주광역시 동구에서 광주의 행정 명칭에 관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조선 세종 때 만호(萬戶) 노흥준(盧興俊)이 광주목사 신보안(辛保安)을 구타한 사건을 계기로 광주목(光州牧)이 군으로 강등되었다가 문종 때에 다시 복고되었다는 이야기이다....
-
일제 강점기인 1924년에 광주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에 의해 설립 및 운영된 은행. 일제 강점기 이후에 조선에 들어온 일본인들 사이에서 성행했던 무진업을 양성하기 위해 전국에 무진회사를 설립하는 '조선무진령'이 공포되어 광주에서도 설립되었다....
-
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던 조선 전기 광주읍성 남문.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지도류와 문인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광주읍성 남쪽은 '진남문(鎭南門)'이라는 이름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진남문의 '진남(鎭南)'은 "남쪽을 누른다"는 뜻인데, 여기서 남쪽은 일본을 가리킨다. 조선시대에는 광주처럼 남문을 진남문이라고 부르는 곳이 많았다. 1896년 9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광주...
-
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던 조선 전기 광주읍성 동문.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지도류와 문인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광주읍성 동쪽은 서원문(瑞元門)이라는 이름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서원문의 의미는 명확하지 않은데, 동쪽에서 태동하는 상서로운 기운을 받으라는 의미에서 '서원(瑞元)'이라고 이름 지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서원에서 ‘원(元)’은 주역(周易)에서 원형리정(元亨利貞)...
-
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던 조선 전기 광주읍성 북문.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지도류와 문인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광주읍성 북쪽은 공북문(拱北門)이라는 이름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광주읍성 북문의 의미는 '북쪽을 공손히 받든다.'는 뜻인데 북쪽은 임금을 상징한다....
-
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던 조선 전기 광주읍성 서문.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지도류와 문인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광주읍성 서쪽은 '광리문(光利門)'이라는 이름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광주읍성 서문의 의미는 명확하지 않은데, '광(光)'은 광주를 의미하고, '리(利)'는 주역(周易)에서 원형리정(元亨利貞) 중 서쪽 방위를 의미한다고 한다....
-
광주광역시에서 전해 내려오는 조선 후기 인조 때의 공신 정충신의 비범한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 조선 후기 인조(仁祖)[재위 1623~1649] 때의 공신인 정충신(鄭忠信)[1576~1636]의 어린 시절의 비범함을 알 수 있는 세 가지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들은 당시 광주목사이던 권율 장군과 관련되어 있다....
-
광주광역시에 속하는 자치구. 동구는 광주광역시 남동부에 있는 자치구로, 광주의 원도심 지역이다. 북쪽으로 광주광역시 북구와 인접하고 있으며, 남쪽과 동쪽으로는 전라남도 화순군과 경계를 이루고, 서쪽으로는 광주천을 경계로 서구와 접하고 있다....
-
광주광역시 동구 서원문 터에서 발굴된 석장승 2기에 대한 풍수 해석. 석장승들은 조선시대 광주읍성 동문인 서원문(瑞元門) 밖이었던 곳에서 수습되었는데, 장승에 새겨진 명문으로 보아 광주를 보호하기 위하여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
광주광역시 동구에서 전해 오는 은혜를 갚은 두꺼비에 관한 이야기. 무등산 계곡의 마을에 살던 가난한 순이가 두꺼비에게 은혜를 베풀었고, 후에 순이가 지네에게 제물로 바쳐지자 두꺼비가 목숨을 바쳐 은혜를 갚았다는 이야기이다....
-
조선시대 광주읍성 내 황화루 동쪽에 있던 정자. 봉생정(鳳笙亭)은 절양루(折楊樓)[지금의 공북루(拱北樓)], 황화루(皇華樓)와 함께 조선 초기인 1415년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1571년 유희춘(柳希春)[1513~1577]은 전라도 관찰사로 지방을 순행하며 광주 지역에도 몇 차례 들렀다. 7월 28일 유희춘의 일기에 따르면, 희경루에서 관찰사인 유희춘, 병사 임진(林晉),...
-
광주광역시에서 경양방죽과 김방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조선 시대 세종 때 광주목사 김방이 꿈에 나타난 할아버지를 통해 경양방죽을 축조하기 위한 수로(水路)를 얻었다는 전설에 얽힌 이야기이다....
-
광주광역시 동구에서 전해 오는 보조국사 지눌과 송광사에 관한 이야기. 보조국사 지눌이 무등산에서 솔개를 날렸더니 지금의 송광사의 치락대에 앉았고, 그 자리에 송광사를 개창했다는 전설이다....
-
광주광역시 동구에서 전해 오는 전라도사 조공의 꿈에 관한 이야기. 새로 부임한 전라도사 조공이 관리들과 지방 토호들의 부정부패를 엄히 처리하였다. 어느 날 유일한 말동무인 정소죽과 고양이 꿈을 말하며 불길한 예감과 함께 이별의 술잔을 나누는 이야기이다....
-
광주광역시 동구 궁동에 있는 감성 공간 예술의 거리 이야기. 지역마다 도시의 특색을 살린 거리 공간이 있다. 서울의 대학로, 인사동 거리, 대구 근대문화골목 등이 그 예이다. 이와 같이 광주에도 예술의 거리가 있다. 광주광역시 동구 궁동에 있는 예술의 거리는 예술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광주의 대표 특화 거리이다. 호남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인 예향 광주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기...
-
광주광역시에서 전해 오는 무등산의 지공너덜에 관한 이야기. 무등산의 지공너덜이 인도의 승려 지공의 수도 장소였다거나 그 제자인 나옹선사, 보조국사 지눌, 김덕령과 관련이 있다는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
광주광역시 동구 학운동의 성촌에서 조직한 계. 위친계(爲親契)는 부모 초상 등이 발생했을 때 서로 도움을 주기 위해 조직하는 계이다. 성촌 위친계는 부모나 조부모 등 계원 가족들의 상사 때 서로 돕자는 취지로 시작했다가, 마을 주민들의 참여도가 높고 계원 수가 많아지며 사실상 마을을 대표하는 동계(洞契)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계원의 형제나 자녀는 입계금 없이 승계할 수 있으며...
-
광주광역시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보호하는 화류목으로 소가구를 제작하는 장인(匠人). 나무를 다루는 장인을 목수라고 하는데, 목수에는 대목장(大木匠)과 소목장(小木匠)이 있다. 소목장은 건물의 창호, 목기, 목가구 등을 제작하는 목수를 말한다. 소목장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부터 사용되었다. 조선 전기까지는 주로 왕실과 상류계층을 위한 목가구가 만들어졌으나, 조선 후기에는 민간에 널리...
-
조선시대 광주읍성 내 객사인 광산관(光山館) 정문에 있었던 2층 누각. 황화루, 공북루, 봉생정, 희경루, 제금루 등은 관아의 누정이다. ‘황화(皇華)’는 고대 중국의 고전 『시경』에 나오는 말로 칙사나 외국 사신을 맞이할 때 환영의 의미로 부르는 「황화곡(皇華曲)」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