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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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遊瑞石山記-鄭之遊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고성혜 |
배경 지역 |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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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기행문 |
작가 | 정지유 |
[정의]
조선 전기 학자 정지유가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 유람에 관하여 지은 글.
[개설]
「유서석산기(遊瑞石山記)」를 지은 정지유(鄭之遊)[1456~1526, 생몰 연대는 1988년 간행된 경주정씨 문헌공파 족보에 근거하여 추정]이다. 「유서석산기」는 "그래서 이번 늦봄에 동생은 드디어 남쪽을 유람할 것을 생각하였다[故今暮春者 阿季遂大擬南遊節]"라는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정지유가 동생 정지반(鄭宗哲)[1464~1517]이 유람한 것을 들은 후 대신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정지반이 무등산을 유람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정지반의 둘째 아들 정언방이 소쇄원의 주인인 양산보(梁山甫)[1503~1557]의 아들 양자징(梁子徵)[1523~1594]과 동서지간이었고, 정언방의 집이 소쇄원 동쪽에 맞닿아 있었으며 소쇄원과 무등산의 거리가 가깝다는 점을 근거로, 정지반이 정언방의 집에 들렀을 때 무등산을 유람하였던 것으로 추측한다. 이에 「유서석산기」는 16세기 작품으로 본다. 「유서석산기」는 『월성세고(月城世稿)』 제2권의 「면와유고(勉窩遺稿)」에 실려 있다. 『월성세고』는 경주정씨 집안의 문집을 한데 모아 엮은 것이다.
[구성]
「유서석산기」는 유람의 목적, 무등산의 승경 묘사, 후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유서석산기」는 정지유의 동생 정지반이 무등산을 유람하게 된 동기, 무등산 유람과 그에 대한 감회, 정지유가 정지반에게 전하는 학문적 조언, 유람에 대한 정지유의 생각 등을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무등산을 호남의 진산으로 웅대하고 수려하다고 평가하면서 풍혈(風穴)이나 기이한 돌의 모습, 그리고 "규봉이 벽처럼 둘러서 있어 만 길이나 놓인 것을 볼 수 있다[圭峯壁立 可見萬仞之高]"는 등의 표현을 통해 주상절리를 중심으로 무등산을 묘사하였다.
[특징]
「유서석산기」의 구성은 유산기의 전형적인 모습이지만, 다른 무등산 유산기와 달리 산을 유람한 시기와 경로 등의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또한, 무등산의 경관에 대한 묘사가 비교적 상세하지 않다.
[의의와 평가]
「유서석산기」는 무등산 관련 유산기 중 시기적으로 두 번째 작품이다. 그리고 지은이가 직접 체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지어지는 유산기의 일반적인 모습과는 다른 독특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무등산 유람기 중 유일하게 타인의 유람 경험을 바탕으로 창작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유람의 동기와 입산 과정, 유람에 대한 감회 등을 비교적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어 유산기의 형식을 갖추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더불어 작품 곳곳에서 보이는 무등산의 지리적 특성은 오늘날에도 귀중한 자료로 인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