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9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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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瑞石山元曉菴老僧永閒委來相訪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성혜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629년 - 김수항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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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689년 - 김수항 사망 |
배경 지역 |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배경 지역 | 원효사 - 광주광역시 북구 무등로 1514-35[금곡동 846] |
성격 | 한시 |
작가 | 김수항 |
[정의]
조선 후기 문신인 김수항이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 원효암 노승과의 인연을 그린 한시.
[개설]
「서석산원효암노승영한위래상방(瑞石山元曉菴老僧永閒委來相訪)」을 지은 김수항(金壽恒)[1629~1689]의 자는 구지(久之), 호는 문곡(文谷), 시호는 문충(文忠), 본관은 안동이다. 아버지는 김광찬(金光燦)이고, 어머니는 김내(金琜)의 딸이다. 우의정·좌의정·세자부(世子傅) 등을 지냈으나, 남인 세력에 미움을 받아 영암·철원·진도 등지로 유배되기도 하였다. 저서로 『문곡집(文谷集)』 28권이 있다.
「서석산원효암노승영한위래상방」은 무등산에 있는 원효암의 노승 영한(永閒)이 찾아온 날의 정취를 그린 한시이다. 제목에서 '서석산'은 무등산의 옛 이름이다. 비록 자의가 아닌 타의로 남쪽 타향살이를 하고 있지만, 고요하고 편안하다고 한 것은 전라남도 영암으로 유배를 왔던 김수항 자신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또한, 살구꽃 흩날리는 뜰에서 세상의 소란을 멀리하려는 마음을 표현하였다. 이어서 무등산에서 찾아온 노승의 맑은 시가 자신의 마음을 달래준다고 말하고 있다. 시에는 ‘칠언율시 세 수를 바치기에, 바로 그 중 한 편을 차운해서 주다[呈七言律三首 走次其一以贈]’라는 주가 붙어 있다. 「서석산원효암노승영한위래상방」은 『문곡집』 제4권에 실려 있다.
[구성]
「서석산원효암노승영한위래상방」은 1구에 7자씩 모두 8구로 이루어진 칠언율시이다.
[내용]
서석산원효암노승영한위래상방(瑞石山元曉菴老僧永閒委來相訪)[서석산 원효암의 노승 영한이 찾아오다]
초강춘만일여년(楚江春晩日如年)[남쪽 강 늦봄은 하루가 일 년 같은데]/ 축객기서임정편(逐客羈棲任靜便)[쫓겨 온 타향살이 고요하고 편안해라]/ 문엄고성한식우(門掩古城寒食雨)[문 닫힌 오래된 성에 한식날 비는 내리고]/ 몽회공원행화천(夢回空院杏花天)[꿈 깬 텅 빈 뜰에는 살구꽃 흩날리네]/ 도장화복포신외(都將禍福抛身外)[길흉화복 모두 다 이내 몸 밖에 두려니]/ 각파진훤도이변(却怕塵喧到耳邊)[세상의 소란 귓가에 이를까 두려워라]/ 홀유노쾌근원방(忽有老儈勤遠訪)[문득 노승이 애써 멀리까지 찾아와]/ 청시일독의유연(淸詩一讀意悠然)[맑은 시 읽으니 그 뜻 편안해라]
[의의와 평가]
「서석산원효암노승영한위래상방」은 무등산을 직접적으로 노래한 시는 아니다. 하지만 유배 생활 중이었던 김수항과 교유했던 인물이 지내는 곳이었으므로 무등산은 김수항에게 특별한 공간이었다. 한편, 「서석산원효암노승영한위래상방」에는 변려문(騈儷文)의 일인자라 불리며 시문에도 뛰어났던 김수항의 단아한 필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