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신익황]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897
한자 無等山-申益愰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황민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672년 - 신익황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722년 - 신익황 사망
배경 지역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지도보기
성격 한시
작가 신익황

[정의]

조선 후기 학자인 신익황이 전라도 광주 지역의 무등산을 대상으로 쓴 한시.

[개설]

「무등산(無等山)」을 쓴 신익황(申益愰)[1672~1722]은 1672년 신명전(申命全)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자는 명중(明仲), 호는 극재(克齋)이다. 1692년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과거는 단념하고 학문에만 몰두하였다. 병조에서는 신익황의 재주를 아껴 과거에 응시할 것을 종용하였으나 사양하였다. 1708년 천거로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고, 1717년 천거로 의영고주부(義盈庫主簿)가 되었으나, 역시 사은(謝恩)[받은 은혜에 대하여 감사히 여겨 사례함]하고 돌아왔다.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甲戌換局) 때 유배를 당하여 1697년에 광양으로 이배되었던 영남학파의 거두 이현일을 1698년에 방문하면서 여러 차례 면대하여 가르침을 받고 이현일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당시 영남을 대표하는 권두인(權斗寅)·권두경(權斗經)·이재(李栽) 등과 학문적으로 교류하였다. 저서로 『극재집(克齋集)』·『운곡도산휘음(雲谷陶山徽音)』·『경재집해(敬齋集解)』·『이기성정통간도(理氣性情通看圖)』·『동국승경와유록(東國勝景臥遊錄)』 등이 있다.

「무등산」신익황의 문집 『극재집』 1권에 실려 있다. 문집을 보면 「무등산」 바로 앞에 「옥과도중(玉果途中)」이 편제된 것으로 보아 신익황이 옥과[현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를 방문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무등산」 결구에 “바라만 볼 뿐 오를 수 없다[可望不可攀]”고 한 것을 보면 옥과를 지나면서 무등산을 보게 되었고 일정상 무등산을 오르지 못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구성]

「무등산」은 1구에 5자씩 모두 8구로 이루어진 오언율시이다.

[내용]

무등산(無等山)

무등여기명(無等如其名)[무등이라는 그 이름처럼]/ 고대막여각(高大莫與角)[크고 높아 견줄 바 없는데]/ 황시규봉수(况是圭峯秀)[하물며 규봉의 수려함이란]/ 천공지소탁(天公之所琢)[천공이 다듬은 솜씨라]/ 아문등기전(我聞登其巓)[듣기에 그 산 꼭대기에 오르면]/ 일안궁해악(一眼竆海岳)[한눈에 바다와 산이 보인다는데]/ 가망불가만(可望不可攀)[바라만 볼 뿐 오를 수 없으니]/ 진흉하유탁(塵胷何由濯)[흉중의 티끌을 어찌 씻을까]

[의의와 평가]

「무등산」신익황의 시 세계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조선 후기 문인들의 무등산 유람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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