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892 |
---|---|
한자 | 到圭峯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황민선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27년 - 기대승 출생 |
---|---|
저자 몰년 시기/일시 | 1572년 - 기대승 사망 |
배경 지역 |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성격 | 한시 |
작가 | 기대승 |
[정의]
조선 전기 학자인 기대승이 무등산 봉우리 중 하나인 규봉에 올라 경관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한시.
[개설]
「도규봉(到圭峯)」을 지은 기대승(奇大升)[1527~1572]은 전라남도 나주 출신으로,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명언(明彦), 호는 고봉(高峯)·존재(存齋)이다. 1549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598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후 승문원부정자, 승정원주서 등에 제수되었다. 1565년 병조좌랑, 이조정랑을 거쳐 1566년에 사헌부지평, 사헌부헌납 등을 지냈다. 1567년 원접사의 종사관이 되었고, 이후에도 대사간, 공조참의 등에 제수되었다. 이황과 12년간에 걸쳐 서신을 교환하였는데, 그중 1559년부터 1566년까지 8년간 이루어진 사칠논변(四七論辨)은 한국 유학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기대승의 제자는 정운룡(鄭雲龍)·고경명(高敬命) 등이며, 저서로는 『논사록』, 『왕복서(往復書)』, 『이기왕복서』, 『고봉집(高峯集)』 등이 있다. 「도규봉」은 『고봉집(高峯集)』 권 1에 실려 있다.
[구성]
「도규봉」은 총 3수로, 1구에 5자씩 모두 16구로 이루어진 오언배율 1편, 1구에 5자씩 모두 8구로 이루어진 오언율시 1편, 1구에 7자씩 모두 4구로 이루어진 칠언절구 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도규봉(到圭峯)[규봉에 이르다]
하음탁동운(河陰擢同雲)[하수 남쪽에 눈구름 빼어나고]/ 사상치일관(泗上峙日觀)[사수 가에는 일관이 우뚝하다]/ 최줄배고민(崔崒排高旻)[높다랗게 하늘로 솟아 있고]/ 등척대은한(騰擲帶銀漢)[뛰어올라 은하수에 닿았네]/ 안지암석기(安知巖石奇)[암석의 기이함 어찌 알까만]/ 역수동해반(亦秀東海畔)[역시 동해 가에서도 빼어나리]/ 즉력절반공(崱屴截半空)[뻗어나가 하늘을 가르고]/ 표묘운우단(縹緲雲雨斷)[아스라이 비구름도 끊겼네]/ 평생모원유(平生慕遠遊)[평생을 먼 유람 바라 왔으니]/ 저립발호탄(竚立發浩歎)[우두커니 서서 크게 탄식한다]/ 선심고정징(禪心古井澄)[선의 마음은 옛 우물처럼 맑고]/ 세려춘빙반(世慮春氷泮)[세상 생각은 봄 얼음처럼 풀리네]/ 분애방미활(氛埃方未豁)[탁한 기운 아직 열리지 않았으니]/ 욕대동방단(欲待東方旦)[동쪽이 밝아지길 기다리려네]/ 강응망하궁(剛凝莽何窮)[굳게 뭉침이 무성해 끝이 없으나]/ 치리기일관(此理期一貫)[이 이치 기필코 관통하리라]
우(又)[또 짓다]
낭곽무진경(朗廓無塵境)[명랑하게 티끌 없는 지경이고]/ 청고불주천(淸高不住天)[청고하게 막힘없는 하늘이로세]/ 유화의석하(幽花欹石罅)[그윽한 꽃 돌 틈에 쓰러지고]/ 고목의암변(古木倚巖邊)[고목나무 바위 가에 기대었네]/ 일전남명활(日轉南溟活)[해가 도니 남명이 널찍하고]/ 운이북두현(雲移北斗懸)[구름 옮기니 북두가 매달렸네]/ 내유궁승상(來遊窮勝賞)[놀러 와서 좋은 경관 모두 즐겨 구경하니]/ 혼각협비선(渾覺挾飛仙)[혼연히 나는 신선을 낀 듯하여라]
우(又)[또 짓다]
서석명산치해연(瑞石名山峙海堧)[서석의 명산 바닷가에 솟았으니]/ 봉영풍일정의연(蓬瀛風日正依然)[봉래산, 영주산의 바람과 햇볕 참으로 비슷하여라]/ 군선경막간청수(羣仙更莫慳淸邃)[뭇 산은 맑고 깊음 아끼지 마라]/ 아역금래최상전(我亦今來最上巓)[나도 이제 가장 높은 곳에 왔노라]
[의의와 평가]
「도규봉」은 기대승 시 세계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조선 전기 문인들의 무등산 유람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