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람계 기적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404
한자 光藍契紀蹟碑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비
지역 광주광역시 북구 하서로 794[용전동 609-1]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김희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68년연표보기 - 광람계 기적비 건립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885년 - 범재풍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944년 - 범재풍 사망
현 소재지 광람계 기적비 - 광주광역시 북구 하서로 794[용전동 609-1]지도보기
성격 기적비
양식 석비
관련 인물 광람계원 148명
재질 석재
크기(높이, 너비, 두께) 140㎝[높이]|51㎝[너비]|22㎝[두께]
소유자 광람계
관리자 광람계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용전동에 있는 광람계 기적비.

[개설]

광람계(光藍契)는 1918년 당시 전라남도 광주군 우치면[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면장 범재풍(范在豊)이 우치면과 본촌면 일대 주민 61명으로 계원을 삼아 창계하였다. 광람계라는 명칭은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도 중국 남전여씨(藍田呂氏) 향약(鄕約)의 전범에 따른 유교적 이상향을 건설해 보고자 하는 바람을 담은 것이다. 계원의 거주지는 생룡, 용전, 태령, 수곡, 입암, 회룡, 단지, 거진, 지야, 본촌, 용두, 양지, 일곡 등이다. 범재풍이 작성한 서문(序文)을 보면 덕업상권(德業相勸), 과실상규(過實相規), 예속상교(禮俗相交), 환난상휼(患難相恤)의 향약 4대 덕목 실천이라는 큰 목표 아래 계원 상호간 친목도모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건립 경위]

1968년 용전마을 광람계원 148인이 참여하여 세웠다.

[위치]

광주광역시 북구 용전동 용전마을 입구에 있다.

[형태]

장방형 좌대 가운데 홈을 파고 비몸을 세워 한옥 지붕형 비갓을 올린 석비이다. 벽돌 담장으로 사방을 둘렀다. 비몸 크기는 높이 140㎝, 너비 51㎝, 두께 22㎝이다.

[금석문]

앞면에 큰 글자로 광람계기적비(光藍契紀蹟碑)라 새겼고, 좌우로 향약 4대 덕목을 새겼다. 뒷면에는 6명씩 16행으로 96명을 새겼고, 좌측면에 35명, 우측면에 17명 등 모두 148명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심한구(沈翰求)가 비문 글씨를 썼다.

[의의와 평가]

전통시대 공동체 운영의 원리로 작용한 향약의 덕목을 기반으로 일제강점기에 설립한 광람계의 계원 명단을 적어 세운 비로, 상부상조의 정신을 현대에 계승하고 있어 향토사적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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