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53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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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瑞石山記[梁會甲]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고성혜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884년 - 양회갑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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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961년 - 양회갑 사망 |
배경 지역 |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성격 | 기행문 |
작가 | 양회갑 |
[정의]
근대 학자 양회갑이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을 유람하고 지은 글.
[개설]
양회갑(梁會甲)[1884~1961]이 지은 「서석산기(瑞石山記)」는 전라도 화순에 있는 적벽에서부터 시작하여 무등산을 유람하고 쓴 유산기이다. 저자 양회갑의 자는 원숙(元淑), 호는 정재(定齋), 본관은 제주(濟州)이다.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이며, 조부는 양호묵(梁虎黙), 외조부는 안평환(安平煥), 아버지는 양재덕(梁在德), 어머니는 죽산안씨(竹山安氏)이다.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초방리에서 태어났다.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과 기우만(奇宇萬)에게 수학하였다. 이후 기우만의 『송사집(松沙集)』과 선조 양팽손의 『학포집』 간행을 주관하였으며, 기우만을 위하여 고강사(高岡祠)를 짓고 제사를 지냈다. 저서로 1965년 간행된 『정재집(定齋集)』 16권 7책과 『풍천록(風泉錄)』, 『성학원류(聖學源流)』 등이 있다. 주요 작품으로 고소대에서 이순신 장군의 대첩비를 봉심한 「고소대봉심충무공대첩비(姑蘇臺奉審忠武公大捷碑)」, 명나라 말기 의인 9명을 찬양한 「명말제의사찬(明末諸義士贊)」, 기생 산홍의 절개를 칭찬한 「기산홍수죄매국적부허침자사(妓山紅數罪賣國賊不許寢自死)」 등이 있다. 「서석산기」는 전라남도를 유람하고 지은 「월출산기」, 「천관만덕산기」 등과 함께 『정재집』 권8에 실려 있다.
[구성]
「서석산기」는 유산의 동기, 주상절리의 형상, 무등산 정기와 인물 활동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1. 유산의 동기
양회갑은 1935년 벗 율계(栗溪) 정기(鄭琦)의 제안으로 무등산을 유람한다. 정기는 적벽과 서석의 강과 산에서 회포를 풀고자 한다면서 양회갑의 동참 의사를 물었다. 양회갑은 적벽에서 정기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과 풍류를 즐긴 후 다음 날 무등산을 등반한다.
2. 주상절리의 형상
양회갑 일행은 물염정에서 출발하여 무등산 규봉-광석대-삼존석-상봉-입석대를 거친다. 다음은 상봉의 모습을 그린 본문의 일부이다.
[전문 일부 번역]
제일봉을 오르니, 우주의 높고 텅 빈 것이 아득히 산을 끼고 날아오르는 듯한 기운이 있었다. 한 산의 모든 모습이 마침내 드러났다. 산의 이름을 ‘서석’이라고 하였으니 산의 모습에서 이름을 얻은 것이다. 서석은 떨기로 서 있어 바르고 곧음이 자를 잰 것과 조금의 차이도 없었으며, 높이는 모두 수십 길이었다. 오르는 것은 구름을 붙잡는 것 같고, 내려오는 것은 연못에 빠지는 것 같아서 마치 화산을 오르는 고통이 있었다. 그러나 산이 본래 덕이 두터우면 호랑이와 표범이 멀리 달아나고, 곤충과 뱀도 자취를 감춘다 하니, 어찌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것을 걱정하겠는가. 새나 다람쥐처럼 마음대로 오르고 내려오며 곁이 있던 사람이 혹 비웃고 잘했다고 치하해도 돌아보지 않았으니, 오직 산을 탐하는 것은 염치가 없어서였다. 비로봉과 천황봉의 최고 높은 곳에서 반야봉과 서석대를 돌아보니, 도리어 방촌의 높이를 내려다보는 듯하였으니 봉우리가 이와 같았다. 혹은 반야봉, 비로봉, 천왕봉은 마땅히 천지인 삼황으로 내가 재미 삼아 증사의 시를 외니 산이 고요하여 마치 태고와 같았다. … [登第一峰 宇宙高虛 飃飃乎有挾山飛騰之氣 一山全面畢露 其曰瑞石 山之所由得名 而簇立方直繩尺不差 高皆數十丈 登比攀雲 降比墜淵 幾發登華之哭 然山素德厚 虎豹遠遁 蟲蛇屛跡 豈跌足爲虞哉 任意上下 如禽如鼫 傍人或譏笑 讚賀而不顧 惟貪山不廉矣 毘盧天皇最高 回顧般若瑞石 反爲下視方寸之高 於岑如是歟 或以般若毘盧天王 當天地人三皇 余戱誦曾史首節 以山靜似太古也 …]
3. 무등산 정기와 인물의 활동
양회갑은 무등산 말미에서 산과 지역 인재 배출의 상관성을 언급하며 양산보·정철·고경명·김덕령 등을 예로 들었다.
[특징]
「서석산기」의 제목인 '서석산'은 무등산을 이르는 별칭이다. 「서석산기」에서는 특히 비유적인 표현이 자주 보이는데, 여러 돌의 형상을 다양하게 빗대어 묘사한 것은 비유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양회갑의 무등산 유람은 전라도 화순의 적벽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는 당시 화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택하였던 유람 과정이다. 양회갑과 함께 유람한 인물 중에서 가장 주목되는 사람은 정기이다. 특히 주상절리에서 두 사람이 주고받은 대화의 내용으로 그 학문의 깊이와 넓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하게 하는데, 산을 등반하던 중에도 두 사람이 밝힌 소신을 읽을 수가 있어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