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9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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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瑞石錄-洪三友堂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고성혜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848년 - 홍삼우당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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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지역 |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성격 | 기행문 |
작가 | 홍삼우당 |
[정의]
조선 후기 학자 홍삼우당이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을 유람하고 지은 글.
[개설]
「서석록(瑞石錄)」을 지은 홍삼우당(洪三友堂)[1848~?]에 대한 행적은 자세히 알 수 없다. 저서로 『삼우당집(三友堂集)』이 있으며, 미간행 필사본으로 남아 있다. 「서석록」은 1886년 초여름 단오절 무렵에 여러 벗과 함께 무등산을 유람하고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내용]
「서석록」은 무등산을 오른 동기, 주상절리의 형상, 무등산과 호남 명현과의 관련성 등을 기록하고 있다. 홍삼우당은 오랜 기간 과거 공부에 매진하고 있던 시기에 뜻이 맞는 몇 명의 벗과 산천 경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무등산을 유람해 보자고 약속하게 되어 다음 날 바로 무등산으로 향하였다는 기술로 무등산에 오른 동기를 밝힌다.
유람의 일정은 호음교, 사곡, 수락사, 낙인진, 귀미암, 설산현, 추풍루, 과치, 연화동, 옥천사, 서봉사, 심적암, 상봉, 해산암, 광석대, 규봉으로 이어진다. 입석대의 바위에 어떤 관찰사가 새긴 글씨를 보고 장관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각각의 장소가 지닌 주상절리의 형상을 세세하게 그리고 있다. 다음은 해산암으로 이어지는 길을 표현한 내용이다. "바위 옆에는 한 줄기의 좁고 험한 길이 있었다. 몸을 붙이고 조심스레 걸으며 부여잡고 돌아 바위 꼭대기에 올라서 굽어보니 아래로 천 길의 아스라한 골짝이 있었다. 바위 위로는 큰 돌이 가로로 걸쳐 있었으니 각각 수십 보(步)였다. 그 아래 석면에 한 작은 구멍이 있어서 한 사람이 출입할 정도였는데, 속칭 '해산암'이라고 하였다. 대개 유람객 중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 의관을 벗고 그 가운데를 들어가 본다면, 텅빈 굴의 사면이 바위로 둘러져 있고, 우러러 보면 다만 푸른 하늘이 보일 뿐이었다. 사람이 그 굴에 출입한 것이 마치 해산한 것과 같다고 하여 장난삼아 이렇게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홍삼우당은 무등산의 기상으로 인하여 주변에서 훌륭한 인물이 많이 나왔다고 말하고 있다. 그 인물로는 고경명·박상·기대승·김덕령 등을 들었으며, 자신이 살고 있는 당대에는 그렇지 않다고 비교하고 있다.
[특징]
「서석록」의 특징은 다른 유산기의 행적과 달리 먼 곳에서부터 출발하였다는 점이다. 또한, 여러 암자와 사찰을 중심으로 이동하였으며, 마지막에 화순의 적벽과 물염정에 가서 뛰어난 경치를 묘사하였다는 점이 독특하다.
[의의와 평가]
「서석록」을 지은 홍삼우당은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과거 공부를 열심히 하였다는 점에서 유학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에 당대의 유학자가 지닌 무등산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