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9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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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久雨喜見無等山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성혜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624년 - 김만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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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671년 - 김만영 사망 |
배경 지역 |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성격 | 한시 |
작가 | 김만영 |
[정의]
조선 후기 학자 김만영이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을 그린 한시.
[개설]
「구우희견무등산(久雨喜見無等山)」을 지은 김만영(金萬英)[1624~1671]의 자는 영숙(英叔), 군실(郡實), 호는 남포(南圃), 본관은 당악(唐岳)이다. 아버지는 송호(松湖) 김태흡(金泰洽)이며,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경전을 탐독하였고 시문에 능하였다. 남포당에서 학문에 전념하며 많은 제자들을 길렀다. 저서로 『남포집』 등이 있다.
「구우희견무등산」은 김만영이 비가 갠 날 집에서 바라본 무등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이다. 시에 등장하는 '서석산'은 무등산을 이르는 이칭(異稱)이며, 오랜 비는 장마를 의미한다. 20여 일을 이어 온 지루한 장마에 지쳐갈 무렵 비구름이 걷히고 무등산이 선명하게 드러났는데, 오랜만에 드러난 층봉은 여름의 푸름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구우희견무등산」은 『남포집』 제4권에 실려 있다.
[구성]
「구우희견무등산」은 1구에 7자씩 모두 4구로 이루어진 칠언절구이다.
[내용]
구우희견무등산(久雨喜見無等山)[장마 중에 기쁘게 무등산을 보다]
아옥동두서석산(我屋東頭瑞石山)[우리 집 동쪽 언저리가 서석산인데]/ 양순봉과우운간(兩旬封裹雨雲間)[이십 일 동안 비구름에 싸여 있었네]/ 금조행치천개제(今朝幸値天開霽)[다행히 오늘 아침 맑게 갠 하늘 만나]/ 노출층봉벽만안(露出層峯碧滿顔)[층봉을 드러내니 푸르름이 가득하네]
[의의와 평가]
「구우희견무등산」에는 김만영의 무등산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시어로 쓰인 “치(値)”는 ‘값’이라는 의미 외에도 ‘만나다’라는 뜻이 있다. 이에 “행치(幸値)”는 ‘다행히 만나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오랜 시간 비구름에 싸여 온전히 모습을 볼 수 없던 무등산을 다시 보게 된 것을 다행이라고 표현함으로써 무등산의 아름다움을 완연히 반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