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8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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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圭峯寺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황민선 |
배경 지역 |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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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지역 | 규봉사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도원길 40-28[영평리 897] |
성격 | 한시 |
작가 | 김극기 |
[정의]
고려 후기 문신인 김극기가 무등산에 있는 규봉사에 오르고 쓴 한시.
[개설]
「규봉사(圭峯寺)」를 지은 김극기(金克己)[?~?]는 고려 명종[재위 1170~1197] 때의 시인으로, 본관은 광주(廣州)이고 호는 노봉(老峰)이다.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벼슬하지 못하고 있다가 무신 정권 시기인 명종 때 용만(龍灣)[현 평안북도 의주]의 좌장(佐將)을 거쳐 한림(翰林)이 되었다. 문장이 뛰어났으며, 농민 반란이 자주 일어나던 시대에 고통받는 농민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많다. 저서로 『김거사집(金居士集)』 등이 있으나, 전하지 않는다. 김극기의 시는 『동문선(東文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남아 있다. 「규봉사」의 배경이 되는 규봉사는 무등산에 있는 송광사(松廣寺)의 말사로,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에 있다.
「규봉사」는 김극기가 무등산에 있는 규봉사에 올라가 느낀 정취를 쓴 한시로, 『신증동국여지승람』 권 40 전라도 화순현(和順縣) 편에 실려 있는데, 첫 번째 수는 『신증동국여지승람』 권 35 전라도 광산현(光山縣) 편에도 수록되어 있다. 「규봉사」 2수는 의천(義天)의 「유제서석산규봉사(留題瑞石山圭峰寺)」[서석산 규봉사에 시를 남기다]를 차운한 것이다.
[구성]
「규봉사」는 1구에 5자씩 모두 8구로 이루어진 오언율시의 한시 2수이다.
[내용]
궤상고난명(詭狀苦難名)[괴이한 모양 이름 짓기도 어려운데]/ 등임만상평(登臨萬象平)[올라 보니 온갖 만물이 가지런하구나]/ 석형재금출(石形裁錦出)[돌 모양은 비단을 잘라낸 것 같고]/ 봉세탁규성(峯勢琢圭成)[산 형세는 옥을 깎아 이룬 것 같네]/ 승천병진적(勝踐屛塵迹)[명승을 밟으니 속세의 자취 사라지고]/ 유서첨도정(幽棲添道情)[깊은 곳에 깃드니 도정 더하네]/ 하당포세망(何當拋世網)[어찌하면 세상의 그물 던져버리고]/ 부좌학무생(趺坐學無生)[가부좌 틀고 앉아 무생의 방법 배우노라]
영산실칭명(靈山實稱名)[신령한 산이라 실로 이름과 맞으니]/ 절정여운평(絶頂與雲平)[산꼭대기는 구름과 더불어 가지런하다]/ 난석수편거(亂石誰鞭去)[어지러운 돌들 누가 채찍질해 몰았을까]/ 기애자삭성(奇崖自削成)[기이한 기슭 절로 깎여 이루어졌네]/ 백암초문도(柏菴初問道)[백암에서 처음 도를 물었고]/ 연사구경정(蓮社久傾情)[연사에서 오래 정을 기울였네]/ 일수용화하(一樹龍華下)[용화수 한 그루 아래서]/ 상봉약후생(相逢約後生)[서로 만나길 내생에 약속해 보네]
[의의와 평가]
「규봉사」는 김극기의 시 세계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자 고려시대 문인들의 무등산 유람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