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8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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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伴題瑞石山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황민선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872년 - 송홍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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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949년 - 송홍 사망 |
배경 지역 |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성격 | 한시 |
작가 | 송홍 |
[정의]
일제강점기 민족 교육 운동가로 활동한 송홍이 무등산을 오르고 쓴 한시.
[개설]
「반제서석산(伴躋瑞石山)」을 지은 송홍(宋鴻)[1872~1949]의 본관은 신평(新平), 자(字)는 익중(翼仲), 호(號)는 운인(雲人)이다. 한말 학자이자 애국지사인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04년에 홍종영(洪鍾榮)·이범창(李範昌)·윤흥섭(尹興燮)·윤영섭(尹寧燮) 등과 함께 일본의 토지 침탈을 규탄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일본 헌병대에 구금되었다. 1905년 5월 헌정연구회 평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대한협회 광주지회에서도 활동하였다. 1909년 3월 광주공립보통학교의 전과(專科) 부교사를 시작으로 1929년까지 광주공립보통학교, 광주공립농업학교, 광주고등보통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였다. 3.1운동 때는 격문을 지어 배포하다가 체포령이 내려지기도 하였다. 학생을 가르칠 때도 담당 과목인 한문과 함께 한국사와 한국 지리를 몰래 가르쳤다.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 많은 학생이 검거되자 첫 번째 공판일인 1930년 2월에 한시를 남기고 사직하였다. 저서로는 『운인산고(雲人散稿)』, 『운인송홍선생유고(雲人宋鴻先生遺稿)』, 『현대 신진 실용 서간문』 등이 있다.
[구성]
「반제서석산」은 1구에 7자씩 모두 8구로 이루어진 칠언율시이다.
[내용]
반제서석산(伴躋瑞石山)[서석산에 오르다]
만산창취진신청(滿山蒼翠趁新晴)[날 새롭게 개니 온 산 푸르고 맑은데]/ 일오의건습불경(日午衣巾濕不輕)[한낮 옷과 수건 젖어 가볍지 않네]/ 계반적평주로대(溪畔磧平州路大)[개울가 모래사장 반반해 고을 길도 크고]/ 운간맹올사루명(雲間甍兀寺樓明)[구름 사이 용마루 우뚝한 절의 누각 선명하다]/ 종연수노지진경(終然垂老知眞境)[마침내 노년에야 진경을 알게 되니]/ 각욕삼선사속정(却欲參禪謝俗情)[세속 정 버리고 참선하고 싶어라] / 인여도리능관객(憐汝闍梨能欵客)[고맙게도 스님은 손님에게 정성스러워]/ 명연재헐찬연생(茗煙纔歇爨煙生)[차 달이는 연기 잠시 그치자 부뚜막 연기 일어나네]
[특징]
「반제서석산」은 송홍의 문집인 『운인유고(雲人遺稿)』에 실려있다. 원래 제목은 ‘회봉(晦峯) 안규용(安圭容)과 설주(雪舟) 송운회(宋運會)와 함께 서석산에 오르다’이다. 이를 보아 송홍이 안규용, 송윤회와 함께 서석산을 유람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석산은 무등산의 별칭이다.
[의의와 평가]
「반제서석산」은 송홍의 시 세계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원제를 살펴보면 당시 저명한 학자들인 안규용과 송운회와의 교유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