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8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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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瑞石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황민선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92년 - 정지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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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663년 - 정지준 사망 |
배경 지역 |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성격 | 한시 |
작가 | 정지준 |
[정의]
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의병으로 활약한 정지준이 무등산을 유람하고 쓴 한시.
[개설]
정지준(丁之雋)[1592~1663]의 본관은 창원(昌原), 호는 적송(赤松)이다. 할아버지는 진사(進士) 정암수(丁巖壽)이고, 아버지는 공조참의(工曹參議) 정유성(丁有成)이다. 송시열(宋時烈)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이 위태하다는 인조의 교서가 반포되자 하윤구(河潤九)·정호민(丁好敏)·김종지(金宗智) 등과 의병을 일으켰으나, 청주에 도착했을 때 강화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회군하였다. 이후 전라도 화순 적벽 강가에 정자를 짓고 임금을 그리워한다는 뜻으로 망미정(忘美亭)이라고 이름 짓고 그곳에서 은거하였다. 정지준은 화순에 망미정 외에도 강선대(降仙臺)·환학정(喚鶴亭) 등을 지었다.
[구성]
「서석(瑞石)」은 1구에 5자씩 모두 8구로 이루어진 오언율시이다.
[내용]
서석(瑞石)[서석산]
설산천고주(雲山千告主)[구름 덮힌 산은 천고의 주인이요]/ 유객백년빈(遊客百年賓)[노니는 객은 백 년의 손님이라네]/ 서석초진세(瑞石超塵世)[서석산은 티끌 세상 너머에 있고]/ 규암읍한진(圭巖揖漢津)[규암은 은하수 향해 서 있네]/ 송회편의구(松檜偏依舊)[소나무는 여전히 옛 모습이고]/ 등라불기춘(藤蘿不紀春)[덩굴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네]/ 일모풍림만(日暮楓林晩)[해 질 녘 단풍 숲 어둑해지는데]/ 반환청간빈(盤桓淸澗濱)[맑은 시냇가에 혼자 서성이노라]
[특징]
「서석」은 정지준이 전라도 화순에서 은거하던 시기에 무등산을 유람하고 감회를 오언율시의 한시로 쓴 것이다. 시에 보이는 '규암'은 무등산 동쪽에 있는 암자인 규봉암[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 897]을 말하는 듯하다. 규봉암은 기암괴석이 둘러싸고 있다.
[의의와 평가]
「서석」은 정지준의 시 세계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조선 후기 문인들의 무등산 유람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