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8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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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廣石臺-金昌翕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황민선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653년 - 김창흡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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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722년 - 김창흡 사망 |
배경 지역 |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성격 | 한시 |
작가 | 김창흡| |
[정의]
[개설]
김창흡(金昌翕)[1653~1722]은 서울 출신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익(子益), 호는 삼연(三淵)이다. 형은 영의정을 지낸 김창집(金昌集)과 예조판서, 지돈녕부사 등을 지낸 김창협(金昌協)이다. 1673년 진사시에 합격한 뒤에 과거에 뜻이 없어 더 이상 과시 공부를 하지 않았다. 백악 기슭에 낙송루(洛誦樓)를 짓고 공부하며 은거하였다. 1681년 김석주(金錫胄)의 천거로 장악원주부(掌樂院主簿)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기사환국으로 아버지인 김수항이 진도에서 사사되자 영평[현 경기도 포천]에서 은거하였다. 1696년 서연관(書筵官)에 초선(抄選)되고, 1721년 집의에 제수되었으며, 1722년에 세제시강원(世弟侍講院)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양했다. 신임사화로 절도에 유배된 형 김창집이 사사되자 지병이 악화되어 죽었다. 저서로 『삼연집(三淵集)』·『심양일기(瀋陽日記)』 등이 있다.
[구성]
「광석대차조정이(廣石臺次趙定而)」는 1구에 7자씩 모두 8구로 이루어진 칠언율시이다.
[내용]
광석대차조정이(廣石臺次趙定而)[광석대, 조정이의 운에 차운하다]
운두하한벽최외(雲頭何限碧崔嵬)[구름 위로 푸르게 우뚝함이 어디가 끝인지]/ 입석잉경귀부개(立石仍驚鬼斧開)[입석은 귀신의 도끼로 열었는지 놀랍구나]/ 만상삼라흉이전(萬象森羅胸裡轉)[삼라만상이 가슴속에 맴도는데]/ 십주공활장중래(十洲空闊掌中來)[공활한 십수는 손바닥 안이구나]/ 신광호장등도력(神光虎將騰刀皪)[신령한 빛은 호장의 칼에서 떨치는 빛이요]/ 묘의용사포국대(妙意龍師布局臺)[오묘한 뜻은 용사가 국량을 펼치는 무대라네]/ 군욕연단어차가(君欲鍊丹於此可)[그대가 여기서 연단하는 것은 좋으나]/ 불연차진자하배(不然且進紫霞盃)[그렇지 않다면 자하배나 내어 놓게나]
[특징]
「광석대차조정이」는 『삼연집(三淵集)』 10권에 수록되어 있다. 제목의 조정이(趙定而)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조정만(趙正萬)[1656~1739]으로, 정이(定而)는 조정만의 자이다. 광석대는 무등산 3대 주상절리대 중 하나로, 규봉암 위에 자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광석대」는 김창흡의 시 세계의 단면을 알 수 있는 작품으로, 김창흡과 조정만의 교유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