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8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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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登瑞石山-裵鉉奎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황민선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841년 - 배현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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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887년 - 배현규 사망 |
배경 지역 |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성격 | 한시 |
작가 | 배현규 |
[정의]
19세기 전라남도 화순 출생의 한학자인 배현규가 무등산을 유람하고 쓴 한시.
[개설]
「등서석산(登瑞石山)」의 저자인 배현규(裵鉉奎)[1841~1887]는 전라도 능주[현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출신으로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극서(極瑞), 호는 계와(溪窩)이다. 품성이 영리하고 뛰어났으며, 문장과 학문으로 고을에 이름이 났다. 특히, 성리(性理)를 깊이 연구하였다. 배현규는 1875년 흥선대원군의 재입궐을 청하는 전라도 상소의 우두머리로 활약한 까닭으로 고금도에 유배를 갔던 회계(晦溪) 조병만(曺秉萬)과 기정진(奇正鎭)의 3대 제자 중 한 명이었다. 노사학파를 이끌며 성리학에 있어서 많은 성과를 이뤘으며 후학을 이끌었다. 의병 활동을 하였던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과 경학과 의리를 논하며 깊이 교유하였다.
[구성]
「등서석산」은 1구에 7자씩 모두 8구로 이루어진 칠언율시이다.
[내용]
등서석산(登瑞石山)[서석산에 올라]
선향재차개타구(仙鄕在此豈他求)[신선골이 여기라 어찌 다른 곳을 구할까]/ 천차시인일일유(天借詩人一日遊)[하늘이 시인에게 하루 유람을 빌려 주었네]/ 하임지공삼천계(下臨地控三千界)[아래로 땅을 당겨 삼천세계를 대하고]/ 고출산종오십주(高出山宗五十州)[높이 호남 오십 고을 산종으로 솟아있구나]/ 마운석세층봉립(磨雲石勢層峰立)[구름 뚫는 바위 기세 층층 봉우리로 서있고]/ 불우뇌성절간유(不雨雷聲絶澗流)[비 없는 우레 소리 깊은 골짝 개울 소리구나]/ 여흥갱기관해일(餘興更期觀海日)[남은 흥취 바다 구경하는 날에 다시 기약해]/ 공혜전로반사구(筇鞋前路伴沙鷗)[지팡이와 짚신으로 길 떠나 갈매기와 짝하리]
[특징]
「등서석산」은 배현규가 무등산을 유람했던 일을 칠언율시로 지은 것으로, 필사되어 전해지고 있다. 서석산은 무등산의 별칭이다.
[의의와 평가]
「등서석산」은 19세기 한학자인 배현규 시 세계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조선 후기 전라도 화순 지역 문인들의 무등산 유람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