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3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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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石谷洞背村-堂山祭 |
이칭/별칭 | 석곡동 배촌마을 동제,석곡동 등촌마을 당산제,석곡동 등촌마을 동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석곡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지현 |
중단 시기/일시 | 1945년 8.15광복 이후 - 석곡동 배촌마을 당산제 중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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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 장소 | 윗당산 - 광주광역시 북구 석곡동 등촌가든 옆 |
의례 장소 | 아랫당산 - 광주광역시 북구 석곡동 청풍수련장 정문 옆 |
성격 | 마을 공동 제사 |
의례 시기/일시 | 정월 열나흗날 밤 |
신당/신체 | 윗당산[느티나무]|아랫당산[소나무] |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석곡동 배촌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 열나흗날 밤에 지냈던 마을 공동 제사.
[개설]
석곡동 배촌마을 당산제는 정월 열나흗날 밤에 배촌마을의 윗당산과 아랫당산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당산제 다음날인 정월대보름에는 신촌마을과 함께 줄다리기를 하고 그 줄을 입석에 감아두기도 하였다.
[연원 및 변천]
배촌마을은 광주광역시 제4수원지 아래에 있던 마을로 웃대실, 상대곡이라고 불리던 곳으로, 마을 뒷산이 덕봉산[415m]인데 무등산 쪽에서 보면, 이 마을이 덕봉산의 등[背]에 해당된다고 하여 등촌 또는 배촌이라고 불렸다. 임진왜란 때 김해김씨(金海金氏)가 들어와 터를 잡아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등촌마을에서 무돌길 제2길이 시작하고 있다. 당산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며, 현재 마을 사람들도 당산제나 당산나무에 대해서 잘 기억하지 못한다. 당산제는 8.15광복 이후 당산나무가 벌목(伐木)된 뒤 중단되어 현재까지 지내지 않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배촌마을의 당산은 윗당산과 아랫당산 두 곳이다. 윗당산은 마을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로 수령 500여 년이 넘은 세 그루 중 가장 오래된 나무이다. 현재 등촌가든[북구 석곡로 148] 옆이 윗당산이 있던 곳이며, 아래에 조그마한 모정[정자로 마을 사람이 앉아서 쉴 수 있도록 지은 곳]이 있다. 아랫당산은 마을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청풍수련장[북구 석곡로 118] 정문 옆에 있는 소나무로 수령이 100여 년 정도이다. 또한 마을 입구에는 입석이 2기 있었는데, 당산제가 끝난 후에 줄다리기를 하고 그 줄을 감아 풍년을 빌었다고 한다.
[절차]
석곡동 배촌마을 당산제는 정월 초순 마을회의를 열어 헌관 3명, 축관 1명, 유사 1명, 집사 2명의 제관(祭官)을 선정한다. 축관은 나이가 많은 사람으로, 헌관은 자식이 많고 다복한 사람으로 선정한다. 유사(有司)[당산제나 모임의 행사를 주관하는 사람]는 제물(祭物) 장만을 하는데, 역시 자식이 많고 집에 우환이 없는 깨끗한 가구를 선정한다. 유사는 제의(祭儀) 사흘 전부터 매일 목욕하고 부정한 것을 피해 깨끗한 상태를 유지한다. 제비(祭費)는 각 가정에서 거출하기도 하고 마을 산의 나무 등을 팔아 마련하기도 한다. 제물로는 돼지고기, 삼실과, 나물, 떡, 술 등을 준비한다. 제기(祭器)도 매년 새로 장만하며, 윗당산과 아랫당산 제물은 따로 마련한다. 당산제 일 주일 전부터 당산 주위에 금줄을 치고, 유사집에서 당산에 이르는 길에 금토를 놓아 부정의 출입을 막는다.
정월 열나흗날 오전이 되면 농악대는 당산과 마을, 공동샘 등을 돌면서 굿을 친다. 이때 유사집에서 가까운 샘에도 금줄을 치는데, 제물 장만이 끝날 때까지는 다른 집에서는 샘을 사용하지 못한다. 제물 장만이 끝나면 동네회관에서 나발을 불어 이를 알리고, 각 가정에서는 이 샘물을 길어 제사를 준비한다. 자정 무렵이 되면 정결한 남자 주민이 제물을 윗당산으로 운반하여 진설한다. 제의(祭儀)는 유교식으로 '분향→청신→초헌→독축→아헌→종헌→소지' 순으로 진행한다. 소지는 제관 소지, 동네 유지 소지, 희망하는 동민 소지 순으로 한다. 제가 끝나면 나발을 불어 이를 알리는데, 마을 각 가정에서는 일제히 폭죽을 터트리며 액막이를 한다.
[축문]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의 축문을 읊었다고 하나,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할 수 없다.
[부대 행사]
당산제가 끝나면 나발을 불어 이를 알리는데, 나발소리가 들리면 마을 각 가정에서는 일제히 폭죽을 터뜨리며 '집안 액막이 한다', '잡귀 물러가라'고 외치며 액막이를 한다. 이어서 마당 가운데 오곡대[가짓대, 피마자대, 고춧대, 수숫대, 참깨대]를 모아 불을 붙인 뒤 '모두 불 넘자'고 외치며 식구대로 불을 뛰어넘는다. 이렇게 오곡대를 뛰어넘으면서 한해 동안 다리가 아프지 않기를 기원하는데 보통 세 번씩 넘는다고 한다. 당산제가 끝난 다음날에는 유사집에 모여 음식을 나눠 먹고 당산제 결산을 한 뒤 마당밟이를 한다. 그리고 각 가정에서는 짚을 한 다발씩 들고 나와 줄을 만들어 줄다리기를 한다. 줄다리기가 끝난 후에는 줄을 토막 내어 동네답의 거름으로 사용한다.
[현황]
석곡동 배촌마을 당산제는 8.15광복 이후 중단되어 현재까지 지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