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3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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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興洞平橋-堂山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부유진 |
중단 시기/일시 | 1945년 이후 - 문흥동 평교마을 당산제 중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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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 장소 | 느티나무 - 광주광역시 북구 문화소통로 309[문흥동 274-1] 문흥동성당 입구 |
성격 | 마을 신앙|동제 |
의례 시기/일시 | 매년 음력 1월 14일 저녁 |
신당/신체 | 느티나무 |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에 있던 평교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며 지냈던 마을 제사.
[개설]
평교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1월 14일 저녁에 마을 할아버지 당산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제사를 지냈다.
[연원 및 변천]
평교마을은 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대주1차아파트 동북쪽에 있었던 마을이다. 문흥동 평교마을 당산제의 시작 시기는 모르는 채 이어져 오다가 8.15광복 이후 중단되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할아버지 당산의 신체(神體)는 느티나무로 문흥동성당 입구에 있다. 당산나무 옆으로 짐대 1개를 세웠다. 마을의 북쪽에서 내려오는 서방천이 마을 서쪽으로 지나갔기 때문에 짐대를 세워 기운을 보완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당산 근처를 짐대 거리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절차]
매년 음력 1월 초에 마을 회의를 열어 정결한 사람을 제관으로 선출한다. 당산 주변에 금줄을 치고 금토를 놓아 부정한 것의 출입을 막았다. 제물로는 삼실과[대추·밤·감], 북어, 쌀, 조, 술 등을 올려 정성껏 제사를 지냈다. 약식으로 치러지는 문흥동 평교마을 당산제는 유교식 절차를 따른다.
[축문]
8.15광복 이후 중단되어 확인하기 어렵다.
[부대 행사]
제사가 끝나면 밤을 새워 가며 굿을 한다.
[현황]
문흥동 평교마을 당산제는 중단된 뒤 지금까지 제를 지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