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등동 용호마을 당산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330
한자 長嶝洞龍虎-堂山祭
이칭/별칭 장등동 용호마을 동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광주광역시 북구 장등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수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단 시기/일시 1994년 이후 - 장등동 용호마을 당산제 중단
의례 장소 큰당산 - 광주광역시 북구 장등동 1013-2 지도보기
의례 장소 큰마누라당산 - 광주광역시 북구 장등동 용호마을 앞 동쪽지도보기
의례 장소 작은마누라당산 - 광주광역시 북구 장등동 용호마을 앞 동쪽지도보기
성격 마을 공동 제사
의례 시기/일시 정월 첫 정일(丁日)
신당/신체 큰당산[느티나무]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장등동 용호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 첫 정일(丁日)에 모셨던 마을 공동 제사.

[개설]

장등동 용호마을 당산제는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세 곳의 당산에서 지냈던 마을 제의로, 정월 첫 정일에 모셨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의 억압으로 인해 중단되었다가 8.15 해방 후부터 1993년도까지 지냈다고 하나, 현재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연원 및 변천]

용호마을은 예전에는 염봉쟁이라 하여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변에 1910년까지 장터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용호마을이라 불려지게 된 연유는 풍수지리상 마을 왼쪽에 있는 산이 용 모양을 하고 있고, 오른쪽에 있는 산이 호랑이 모양을 하고 있어서 '용호(龍虎)'라 불려지게 되었다 한다. 약 150여 년 전에 전주이씨, 김해김씨, 광산김씨 등이 들어와 마을에 터를 잡았다고 전해진다. 용호 당산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이나 구전은 남아있지 않으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의 억압으로 인해 중단되었다가 8.15 해방 후부터 1993년도까지 지냈다고 하나, 현재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용호마을의 당산은 총 세 곳으로 큰당산, 큰마누라당산, 작은마누라당산으로 불렸는데, 마을 위쪽[현 장등동 1013-2]에 있는 큰당산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고사하였다. 큰당산은 광주광역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데, 수령이 약 400여 년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이다. 나머지 두 당산은 마을 앞 동쪽에 있었다고 전한다.

[절차]

장등동 용호마을 당산제는 매년 섣달 스무날 무렵 헌관, 축관, 유사 등 총 3명의 제관(祭官)을 선정한다. 유사(有司)[당산제나 모임의 행사를 주관하는 사람]는 특히 정성을 다해야 하는데, 제가 끝날 때까지 궂은 곳을 피하고 궂은 음식을 먹지 않는 등 금기를 지키며 생활한다. 제의(祭儀)는 정월 첫 정일(丁日)에 모시는데, 만약 설날과 겹치면 그 다음 정일에 당산제를 모셨다. 당산제 일 주일 전쯤 마을 입구와 당산 주변에 금줄을 치고 금토를 놓았다. 제비(祭費)는 마을 각 집마다 갹출하여 마련하기도 하고, 마을 자금 또는 마을 공동으로 논매는 삯 등을 모아 충당하기도 하였다. 제물(祭物) 중 돼지는 통으로 준비하고, 나머지는 일반 제사와 유사하게 장만하였는데, 제물의 준비는 깨끗하게 하며 맛을 본다거나 특별한 양념 등은 하지 않고 소금으로 간만 약간 하였다.

제의 당일이 되면 초저녁에 마을을 돌며 굿을 치다가 시간이 되면 유사집으로 가서 제물 등을 가지고 큰당산에 오른다. 제물은 준비한 그대로 진설하기 때문에 특별히 제기(祭器) 등은 준비하지 않고, 자리는 유사집에서 가져와 사용하였다. 큰당산에 제를 모시는 동안 모닥불을 피우는데 이는 추위 때문이라 한다. 나무는 주변의 산에서 벌목하여 사용하였다. 큰당산에는 제관들과 농악대만 참여하는데, 이때 제관들의 옷은 깨끗하게 손질한 평상복을 입었다. 소지와 간단한 음복이 끝나면 당산 옆에 헌식을 하게 되는데 이때 진설된 음식을 조금씩 덜어 백지에 싸서 묻는다. 당산에서의 제가 끝나면 나발을 불어 제의 끝을 마을에 알렸다. 큰마누라당산과 작은마누라당산에 제를 올리는데, 이때는 제물을 진설하지 않고 술잔만 올리고 굿을 치는 등 간단하게 진행한다. 이어 마을샘에 가서 샘굿을 치고 마을 앞터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음복을 하며 즐긴다.

[부대 행사]

당산제가 끝나면 10여 일 정도 걸궁(乞窮)[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마을 집집을 돌아다니며 악기를 연주하거나 축원의 노래를 불러주는 일]을 치고, 2월 초하룻날에 마을 회의를 열어 당산제와 걸궁 등을 결산하고 마을의 대소사를 논의하였다.

[현황]

장등동 용호마을 당산제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의 억압으로 인해 중단되었다가 8.15 해방 후부터 1993년도까지 지냈다고 하나, 현재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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