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월동 죽곡마을 당산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329
한자 望月洞竹谷-堂山祭
이칭/별칭 망월동 죽곡마을 동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수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단 시기/일시 1945년 8.15 해방 이후~1950년 6.25전쟁 이전 - 망월동 죽곡마을 당산제 중단
의례 장소 할머니당산 -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죽곡마을지도보기
성격 마을 공동 제사
의례 시기/일시 정월 열나흗날
신당/신체 할머니당산[느티나무]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죽곡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 열나흗날 밤에 지냈던 마을 공동 제사.

[개설]

망월동 죽곡마을 당산제는 당산나무에서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로, 정월 열나흘날 밤에 지냈다. 당산제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8.15 해방 이후에서 6.25전쟁 이전에 중단되었다.

[연원 및 변천]

마을에 대나무가 많아 죽곡마을 또는 대실마을이라고도 불렸다. 약 350여 년 전 해주오씨(海州 吳氏)가 병자호란을 피해 이곳으로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전해진다. 당산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8.15 해방 이후 6.25전쟁 이전에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당산제를 주도하던 마을 주민이 별세한 후, 적극적으로 당산제 준비에 나서는 사람들이 없어 자연스럽게 중단되었다고 전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죽곡마을의 당산은 마을 앞에 위치한 느티나무로 수령은 약 400여 년으로 추정된다. 본래 두 그루가 마주보고 있었다고 하는데, 한 그루는 죽고 할머니당산만 현존하고 있다. 당산나무 옆에는 1946년 최초 건립된 모정[정자, 마을 사람이 앉아서 쉴 수 있도록 지은 곳]이 있는데 1973년, 1983년, 1992년, 2009년 등 지속적으로 개량 개축된 것으로 보아 당산나무와 모정이 농업이 생업인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나 회의 공간으로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죽곡마을의 당산나무는 영험하여 잎이 한꺼번에 피면 풍년이 들고, 조금씩 피면 흉년이 든다는 속신이 전해지기도 한다.

[절차]

망월동 죽곡마을 당산제는 매해 음력 섣달 10일에 마을 총회를 개최하여 유사 2명과 제관을 선정한다. 마을에는 위친계의 일종인 '촌계'가 있어 이를 통해서 유사(有司)[당산제나 모임의 행사를 주관하는 사람]를 결정한다. 제관이나 유사로 선정되면 거절해서는 안 된다는 법칙이 있다. 유사는 깨끗한 사람을 뽑으며 제가 끝날 때까지 부정한 곳에 가지 않도록 조심하며 지낸다. 유사들은 제물(祭物)을 마련하는 것 외에도 제의(祭儀)에서 각각 초헌과 아헌을 맡는다. 제물로는 돼지머리, 소고기, 대추, 밤, 은행, 백설기, 인절미, 탕, 나물 등을 준비한다. 음식의 준비는 제일(祭日) 낮에 하는데, 음식 준비 시 양념은 넣지 않으며 생선 등은 전혀 마련하지 않는다. 제비(祭費)는 마을 자금을 마을 사람들에게 빌려주고 받는 이자로 충당한다. 제의는 정월 열나흗날 밤 11시 무렵 지내는데, 일주일 전쯤 당산나무 주변에 금줄을 치고 유사의 집 앞과 당산나무 주변에 금토를 뿌려 놓는다. 제에는 제관과 농악대만 참여할 수 있으며, 여자들은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였다. 제관의 복식은 평상복이었으며, 제차(祭次)는 일반적인 유교식 제사 절차대로 '강신→분향→재배→잔올림→재배'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소지, 음복 등이 끝나면 헌식을 하는데, 진설했던 음식을 조금씩 떼어 각각 백지에 싸서 나무 옆을 파묻고 납작한 돌 3개로 누르고 그 위에 황토를 발라서 덮는다. 그리고 금줄을 준비해서 그곳에 둘러 놓는다.

[부대 행사]

당산제가 끝나고 정월대보름부터 마당밟이를 행한다. 매일 밤에만 진행하므로 하루에 한두 집 정도 마당밟이를 하는데, 굿은 정재굿[부엌굿], 마당굿, 길굿, 샘굿, 장광굿[장독] 등을 차례로 친다. 이때 돈, 곡식 등 음식과 술을 대접한다. 정월 그믐께는 결산회의를 열고 마당밟이를 통해 모은 돈과 곡식은 마을기금으로 관리하여 여러 가지 일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현황]

망월동 죽곡마을 당산제는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8.15 해방 이후 6.25전쟁 이전에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당산제를 주도하던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중단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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