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325
한자 花岩洞花岩-堂山祭
이칭/별칭 화암동 화암마을 동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수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단 시기/일시 1950년 6.25전쟁 이후 - 화암동 화암마을 당산제 중단
의례 장소 제1당산[천룡당산]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 화암마을지도보기
의례 장소 제2당산[할아버지당산]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 화암마을 아래지도보기
의례 장소 제3당산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 화암마을지도보기
의례 장소 제4당산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 화암마을지도보기
의례 장소 제5당산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 화암마을 충민사지도보기
성격 마을 공동 제사
의례 시기/일시 정월 열나흗날
신당/신체 제1당산[팽나무]|제2당산[소나무]|제3당산[소나무]|제4당산[느티나무]|제5당산[팽나무]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 화암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 열나흗날에 모셨던 마을 공동 제사.

[개설]

화암동 화암마을 당산제는 마을 안팎 곳곳의 12당산에서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셨던 마을 제의이다. 당산의 형태는 나무와 돌무덤으로 전해지는데, 당산제가 중단된 지 오래되어 돌무덤은 모두 흩어지고 없다. 6.25전쟁 이후 중단되어 지금까지 시행되지 않고 있다.

[연원 및 변천]

무등산 북서쪽에 있는 화암동은 지형이 곶 형태이고, 바위가 많아 '꽃바우' 또는 '화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다른 설로는 의병장인 송제민(宋齊民)[1549~1602]의 첫째 아들 송타가 이곳에 백일홍을 심고 살면서 집 이름을 '화암당'이라고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무등산 제4수원지에서 충민사 쪽으로 가는 도로변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약 200여 년 전에 보성안씨(寶城安氏)들이 들어와서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나중에 광산이씨(光山李氏)가 들어와서 대대로 거주하였다고 한다. 화암 당산제는 6.25전쟁 이후 중단되어 현재는 시행되지 않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화암마을에는 본래 12곳에 당산이 있었다고 하며, 신체는 나무와 돌무덤이 섞여서 존재하였다. 현재는 당산제가 중단된 지 오래되어 각 당산이 모두 보존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제1당산은 마을 뒤 팽나무로 천룡당산으로 불렸다. 제2당산은 할아버지당산으로 마을 아래 있는 소나무 중 제일 큰 수령 300년이 넘은 소나무이다. 제3당산은 1993년 당시 마을 주민 이승옥의 집 앞 소나무이며, 제4당산은 마을 앞 느티나무였으나 6.25전쟁 때 누군가가 베어버려 새로 느티나무를 심었다. 제5당산은 전상의 장군을 모신 충민사 앞에 있는 팽나무이다. 제6당산부터 제12당산까지는 마을 주변의 작은 돌무덤이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모두 사라지고 없다.

[절차]

화암동 화암마을 당산제는 정월 초닷새 무렵에 마을회의를 열어 축관과 화주 등을 선정한다. 축관은 제를 주관하는 역할을 하는데, 마을 어른 중에 자손이 많고 깨끗한 사람으로 선정한다. 선정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매년 같은 사람이 맡는 경우가 많았다. 제물(祭物)을 장만하는 화주 또한 깨끗한 사람으로 선정하고 부정타지 않도록 금기를 철저히 지키도록 하였다. 깨끗한 사람을 택하기 위해 보살 생활을 하였던 마을 주민이 매해 맡아서 진행하였다고 한다.

제비(祭費)은 집집마다 거출하는데 이를 지붕마을돈이라고 불렀다. 화주는 당산제 사흘 전부터 나물, 포, 쇠고기, 밤, 대추 등 제물을 준비하고, 제기(祭器)도 매년 새로 구입하여 사용하였다. 제일(祭日) 며칠 전부터 마을 입구에 금줄과 금토를 놓고 부정한 사람을 막았다. 외부인이나 상갓집을 다녀온 사람 등은 금줄을 쳐놓은 곳을 우회하여 다니며 몸가짐을 조심하였다.

정월 열나흗날 저녁 농악대는 농악을 치며 마을을 돌고 큰당산에서 작은당산 순으로 제를 지냈다. 제관은 흰 도포를 차려입고 유교식으로 '강신→헌작→독축→소지→헌식→철상' 순으로 제의(祭儀)를 진행하였다. 축관, 이장, 연장자, 농악대 순으로 소지를 올리며 각자 소원을 빌고, 음식을 조금씩 떼어 묻어 헌식하면 제가 마무리된다. 당산제의 시작과 끝은 나발을 불어 마을에 알렸다.

[부대 행사]

당산제가 끝나고 정월대보름부터 마당밟이를 하여 집집마다 음식을 차려 나누어 먹었다. 그믐 무렵에는 전년도 마을 사업 결산과 이장 선출, 품삯 등을 논의하는 마을회의를 개최하였다.

[현황]

화암동 화암마을 당산제6.25전쟁 이후 중단되어 지금은 시행되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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