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7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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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乳業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양산제로 3[양산동 355]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선봉규 |
설립 시기/일시 | 1962년 - 평동우유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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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시기/일시 | 1986년 - 한서유업 해체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2년 - 한서유업 매일경제신문 '82중소기업 성공 사례 장려상 수상 |
최초 설립지 | 한서유업 - 광주광역시 북구 양산제로 3[양산동 355] |
성격 | 기업체 |
설립자 | 고제우 |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양산동에 있었던 우유 및 유제품 생산업체.
[개설]
한서유업은 1962년부터 1986년까지 운영되었던 광주 지역의 우유 및 유제품 생산업체이다. 1962년 평동우유에서 시작해 광산우유, 광주우유를 거치면서 비교적 순탄한 성장을 거듭했고, 1981년 연 매출액 50억 원을 기록하는 전국적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1986년 낙농가의 잇따른 원유 파동, 세금 포탈 등으로 도산하여, 1986년 2월에 광주은행의 법정 관리에 들어갔다가, 12월에 경매 처분으로 해태제과그룹 호남유업에 넘겨졌다.
[설립 목적]
식생활 개선으로 가난을 해결해야 한다는 소명 의식으로 설립하였다.
[변천]
1962년 평동우유로 설립되었다. 당시 정부의 낙농 마을 조성 계획의 일환으로 젖소 한 마리를 분양받았으며, 짜낸 우유를 자전거에 싣고 방문 판매를 시작하였다. 지역 이름을 따서 평동우유라 지었다. 이후 광산우유, 광주우유를 거쳐 한서유업으로 성장하였다. 1981년에는 총자산 35억 원, 자본금 4억 원, 낙농가 300여 가구, 젖소 3,000마리, 연 매출액 50억 원, 종업원 218명 규모의 전국적인 기업으로 급성장하였다. 1982년에는 매일경제신문의 중소기업 성공 사례[장려상]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정부의 젖소 도입에 따른 광주 전남 지역 400여 낙동가들의 원유 파동 등으로 적자가 누적되어 도산하며, 1986년 2월 광주은행의 법정 관리에 들어갔다가, 12월에 경매 처분되었다. 경매 처분 당시 종업원 300여 명, 집유 농가 400가구, 연 매출액 90억 원, 자산 85억 원이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우유, 요구르트 등 유제품 생산 및 판매와 관련한 사업과 업무를 수행하였다.
[의의와 평가]
국민 보건 향상과 함께 낙농 발전 및 농가 소득 증대에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