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1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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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源道 |
영어공식명칭 | Jeong Wond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우산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효선 |
[정의]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활동한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정원도(鄭源道)[1880~1932]는 전라남도 광주군 우산면 마산촌[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우산동]에서 태어났다. 1906년부터 미주 공립협회(共立協會) 로스앤젤레스지방회[羅城地方會] 서기를 맡아 활동하였으며, 1914년부터 1925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활동 사항]
정원도는 1906년부터 미주 공립협회 로스앤젤레스지방회 서기를 맡아 활동하였으며, 1908년에는 샌프란시스코지방회[桑港地方會] 회원으로, 1909년에는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샌프란시스코지방회 총무 및 회장 임시대판으로 활동하였다. 1910년에는 샌프란시스코 대표원으로 『신한민보(新韓民報)』에 「창건보관가옥취지서(倡建報館家屋趣旨書)」를 발표하였다.
1911년 로스앤젤레스지방회 국민의무금(國民義務金) 수납의원 및 서기로 활동하였으며, 1912년 북미지방총회(北美地方總) 구제원(救濟員) 및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1912년 『신한민보』 편집인 및 주필, 대한인국민회 통상대의회(通常代議會) 의장을 맡았다. 1913년 북미지방총회관과 신한민보사 물품 조사위원, 북미지방총회 총무 겸 서기 등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뉴욕지방회 주최로 열린 3.1절 독립선언 기념 경축식에서 헌법을 낭독하였으며, 1920년 하반기 구미위원부(歐美委員部)[미국 워싱턴에서 설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외교 담당 기관]에 재정을 지원하였다. 1921년 뉴욕지방회 법무·재무로 활동하였으며, 1914년부터 1925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정원도는 1932년 7월 12일 뉴욕에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