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8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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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梁載賢 |
영어공식명칭 | Yang Jaehyeon |
이칭/별칭 | 미재(薇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바른 |
출생 시기/일시 | 1556년 - 양재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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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592년 - 양재현 사망 |
거주|이주지 | 문산(文山)마을 -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
묘소|단소 | 양재현 단소 -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대둔산로 191[묵산리 산 79-34] |
성격 | 무관 |
성별 | 남 |
본관 | 제주(濟州) |
대표 관직 | 참판(參判) |
[정의]
조선 전기 광주 지역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활약한 무신.
[가계]
양재현(梁載賢)[1556~1592]의 본관은 제주(濟州)이다.
[활동 사항]
양재현은 1556년에 태어났으며, 자는 미재(薇齋)이다. 양재현은 임진왜란 직전에 광주 지역 문산(文山)마을[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에 터를 잡고 살았다. 무과에 급제하여 방답진(防踏鎭)에서 방어하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권율(權慄)의 막하에서 싸웠으며, 금산 이치(梨峙)에서 전투하다가 순절하였다.
양재현은 사망 후 참판(參判)에 추증되었다. 후손들이 양재현이 살았던 문산마을에서 자작일촌(自作一村)을 이루며 살았다.
[상훈과 추모]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에 있는 ‘도원수권공이치대첩비(都元帥權公梨峙大捷碑)’ 서벽에 ‘양재현 제주인(梁載賢濟州人)’이 새겨져 있다. ‘도원수권공이치대첩비’는 1592년 임진왜란 때 경상도와 충청도를 휩쓸던 2만여 병력의 일본군이 호남 지방으로 넘어오려 하자 권율이 동복현감 등 1,5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격퇴한 이치대첩을 기념하여 세운 비석이다. 양재현 역시 그 공로가 인정되어 이름을 나란히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