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8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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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德弼 |
영어공식명칭 | Jeong Deokpil |
이칭/별칭 | 몽필(夢弼),사량(士良),취은(醉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홍창우 |
출생 시기/일시 | 1725년 - 정덕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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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756년 - 정덕필 생원 입격 |
활동 시기/일시 | 1762년 - 정덕필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763년 - 정덕필 부사정(副司正)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771년 - 정덕필 어천찰방(魚川察訪)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774년 - 정덕필 부사직(副司直)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782년 - 정덕필 부사과(副司果)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793년 - 정덕필 경기도사(京畿都事)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795년 - 정덕필 돈녕도정(敦寧都正) 임명 |
몰년 시기/일시 | 1800년 - 정덕필 사망 |
출생지 |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 |
성격 | 문관 |
성별 | 남 |
본관 | 하동(河東) |
대표 관직 | 장령|경기도사 |
[정의]
조선 후기 광주 지역 출신으로 장령, 경기도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정덕필(鄭德弼)[1725~1800]의 본관은 하동(河東)이며, 자는 몽필(夢弼)·사량(士良), 호는 취은(醉隱)이다. 문절공(文節公) 정수충(鄭守忠)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정오도(鄭吾道), 아버지는 정대중(鄭垈重)이며, 어머니는 신즙(申楫)의 딸 고령신씨(高靈申氏)이다.
[활동 사항]
정덕필은 1725년(영조 1)에 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에서 태어났으며, 1756년(영조 32)에 생원에 입격하였고, 1762년(영조 38)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정덕필의 과거 급제와 관련한 방목이 남아 있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문과에 급제하기 전에는 ‘몽필(夢弼)’이라는 이름을 썼다.
정덕필은 과거에 급제한 이듬해인 1763년(영조 39)에 부사정(副司正)에 보임되어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이후 부사직(副司直), 부사과(副司果)와 같은 무관직에 주로 종사하였다. 그 밖에 어천찰방(魚川察訪), 경기도사(京畿都事), 돈녕도정(敦寧都正) 등 외직에서도 활동하였다. 정덕필은 경연 자리에서 직설적이고 바른말로써 당시의 폐단 시정에 대한 방책을 제시하여 왕의 총애를 받았다.
[학문과 저술]
『취은일고(醉隱逸稿)』는 정덕필의 문집으로 1974년에 정덕필의 6대손인 정해영(鄭海英)이 간행하였다. 전체 2권 1책의 석인본으로, 홍석희(洪錫喜)의 서문과 후손 정해영, 정해규(鄭海圭), 정명래(鄭明來)의 발문이 보이며,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