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08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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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反外勢反獨裁救國學生鬪爭委員會 |
영어공식명칭 | Anti-foreign power·Anti-Dictatorship Saving the Nation Youth Struggle Committees |
이칭/별칭 | 구학투,전남대 구학투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로 77[용봉동 300]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연숙 |
설립 시기/일시 | 1987년 3월 17일 - 반외세반독재구국학생투쟁위원회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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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로 77[용봉동 300] |
성격 | 학생운동 단체 |
[정의]
광주직할시에 있었던 민주화 운동 관련 학생 단체.
[설립 목적]
반외세반독재구국학생투쟁위원회는 전두환 정권의 장기 집권을 저지하고 미국의 내정간섭에 반대하며 5월투쟁을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하여 조직되었다.
[변천]
반외세반독재구국학생투쟁위원회는 1987년 3월 17일 전남대학교도서관 별관 앞 광장에서 ‘표정두열사추모제 및 반외세반독재구국학생투쟁위원회 출정식’을 갖고 출범하였다. 산하 기구로 ‘장기집권음모내각제분쇄 투쟁위원회’, ‘민중생계지원쟁취 투쟁위원회’, ‘미국내정간섭반대 투쟁위원회’를 두었고, 이후 5월투쟁을 준비하면서 5월 7일에 ‘5월학살원흉처단 및 호헌분쇄 특별투쟁위원회[오투위]’를 추가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반외세반독재구국학생투쟁위원회는 1987년 3월 30일 ‘3.30 1주년 시국대토론회’를 열고, 1986년 당시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발생하였던 신민당 개헌 현판식 사건 및 개헌 국면에 대한 내용을 고찰하는 토론회를 가졌다. 같은 해 4월 13일 전두환 정부가 호헌 조치를 발표하자, 당일 오후 3시 30분쯤 ‘장기집권음모 호헌분쇄를 위한 학생총회’를 개최하고 교내 시위 및 농성에 들어갔다. 다음 날인 4월 14일에는 제2차 학생 비상총회 및 교내 시위를 진행하였으며, 이후 총학생회장을 비롯한 20여 명이 단식 농성을 시작하였다. 반외세반독재구국학생투쟁위원회는 4월 15일 학생 1,5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단식 농성을 지지하는 대회를 열고 전남대학교 본부에서 철야 농성을 전개하였다. 이후 단식 농성은 4월 17일 단식에 참가한 학생들이 집회와 시위를 전체 학생과 함께할 것을 결의하면서 해제하였다.
5월에도 반외세반독재구국학생투쟁위원회는 전남대학교 학생운동 세력과 함께 집회 및 시위를 이어 나갔다. 5월 11일~5월 14일 오월제에 이어 5월 18일에는 ‘광주민중항쟁 7주기 계승제’를 갖고 교내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 교내 시위를 가두 시위로 전환하려는 과정에서 반외세반독재구국학생투쟁위원회 구성원이 연행되기도 하였다. 반외세반독재구국학생투쟁위원회를 비롯한 전남대학교 학생운동 세력은 4.13호헌 조치 이후 4.19투쟁, 그리고 5월투쟁을 연이어 나가면서 5월투쟁을 전국화하고자 노력하였으며, 이 흐름에서 6월항쟁을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5월투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반외세반독재구국학생투쟁위원회는 구성원들이 잇달아 연행되고 연일 투쟁이 계속되면서 운동 역량이 감소하여 6월항쟁 기간에는 일부 구성원을 중심으로 투쟁을 이어 나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