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A020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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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다일 |
1960년대는 정부가 무허가 건축물을 정리하던 시기였다. 6·25전쟁 때 서울에 정착한 사람들이 무허가 건축물을 짓고 살기 시작했는데, 1960년대 서울시 추산으로 13만 6650동의 무허가 건축물이 조사됐다. 서울시에서는 경기도 광주에 대단위 단지를 조성해 이주시킬 계획을 세웠고, 1968년에는 서울 각 지역에 시영아파트를 건설할 계획을 세웠다. 속전속결로 지어진 아파트는 1970년 1년 동안 1만 5840가구가 분양됐다. 그 가운데는 서대문구 창전동에 와우아파트도 있었다. 무리한 일정과 부실한 공사의 결합으로 와우아파트는 1970년 4월 8일 붕괴됐다. 이 사건으로 서울시장이 자리에서 물러났고, 부실하게 지어진 수많은 아파트가 철거됐다.
[구로동에 들어선 아파트]
1977년 구로동에 들어선 구로시영아파트를 이야기하려면 무허가 건축물에서 와우아파트까지의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한다.
와우아파트가 무너지면서 서울시의 도시 개발 정책 역시 같이 무너졌다. 새롭고 튼튼하고 믿을 수 있는 아파트를 지어야 사람들이 이주를 할 수 있었다.
이때 구로동에 ‘구로시영아파트’가 들어섰다. ‘구로시영아파트’ 길 건너편에 살았던 이인엽[1955년생] 씨는 구로시영아파트가 들어서던 광경을 모두 지켜봤다. “원래 연탄 공장이 있던 자리에요. 거기에 터를 닦더니 아파트가 들어섰어요. 당시는 대단했죠. 높고, 반듯해 보였으니까요. 대부분 판잣집에 학고방인 동네 가운데에 아파트가 들어섰어요.”
이인엽 씨에 말에 따르면 구로시영아파트 앞쪽은 쓰레기장이었다. 1970년대 당시 구로동은 공장들과 공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살던 공영 주택이 밀집해 있었다.
버스가 다니는 큰길에서 공영 주택촌을 지나야 구로시영아파트로 가는 길이 있었다. 구로공단과 구로시영아파트는 바로 붙어 있어서 공장 지대에 들어선 아파트였다. 하지만 주변 공영 주택 지역은 공동 화장실에 전기, 수도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곳이니 아파트는 당시엔 선망의 공간일 수밖에 없었다.
[차례로 이어진 아파트촌]
구로시영아파트가 들어선 이후로 구로동과 대림동 인근 지역에는 우성아파트와 현대아파트 등 여러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러나 당시 구로동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구로공단’이란 지역적 특성과 인근에 쓰레기장과 공영 주택촌을 끼고 있다는 이유로 크게 각광받는 지역은 되지 못했다. 그 후 구로동의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구로시영아파트 재개발 논의가 나오면서부터다.
그리하여 1977년 준공됐던 구로시영아파트는 1990년대 재개발 논의를 거쳐 2005년 삼성래미안아파트로 재건축됐다. 이때는 구로공단이 구로디지털단지로 변화를 추진하는 때여서 구로동의 빌딩숲이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밤낮 없는 건축 공사에도 이웃으로 살아가기]
이인엽 씨는 구로동에서 살아가려면 서로서로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로동의 아파트와 재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와중이라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인엽 씨의 설명을 듣고 보니 구로디지털단지라 불리는 최첨단 도시가 인간적인 면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구로동의 공장들은 벤처 빌딩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오래된 아파트는 새롭게 지어졌고 공영 주택촌은 아파트 단지로 재건축됐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적게는 1~2년간 먼지와 소음에 시달려야 한다. 하지만 구로동에서 있었던 재건축의 역사를 살펴보며 이야기를 들어 보니 피해가 어느 일방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주고받는 것이었다.
1960년대부터 공영 주택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1977년 구로시영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공사의 피해를 받았다.
먼지가 날리고 공사장의 소음에 방음은커녕 비가 새지 않으면 다행인 공영 주택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렇게 들어선 구로시영아파트라고 편치는 않았다. 1995년 시영아파트 바로 앞에 지금의 해피랜드F&C라는 의류 업체가 사옥을 신축했다.
당시 강남에서 건물을 임대해서 사용했던 회사가 저렴한 구로동으로 사옥을 지어 이전한 것이다. 당시 아파트 주민들이 소음과 먼지를 이유로 피해 보상을 요구했고, 해피랜드F&C에서 구로시영아파트 주민들에게 일부 보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발은 이어졌다. 해피랜드F&C가 들어오고 불과 몇 년 되지 않아서 구로시영아파트 재개발이 결정됐다.
20층의 초고층 아파트가 지어졌다. 해피랜드F&C 역시 공사장의 소음과 진동으로 피해를 받았다. 또한 바로 길 건너편에 살던 공영 주택촌 사람들도 같은 자리에서 두 번에 걸친 아파트 건축으로 또다시 피해를 받았다.
건축 붐 속에서 한 공간이 공사를 끝내면 또 다른 공간이 공사로 이어지는 시절이 계속됐다. 결국 일부 공영 주택촌 사람들이 2006년 아파트를 지어 입주한 데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구로동 대부분의 지역이 아파트 혹은 벤처 빌딩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이제 구로동 주민들은 1970년대 구로공단이 잘 나가던 시절의 풍류를 다시 한 번 누리길 기대하고 있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