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1873 |
---|---|
한자 | 加里峯電子勞動組合 |
영어음역 | Garibongjeonja Nodongjohap |
영어의미역 | Garibongjeonja Labor Union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배현주 |
[정의]
서울특별시 구로구에 있었던 노동 운동 관련 사회단체.
[개설]
가리봉전자 노동조합은 구로 지역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민주 노동조합이다.
[설립목적]
가리봉전자 노동조합은 무리한 생산량 강요, 특근 및 잔업 강요, 조회 시간 연장 등과 같은 부당한 노동 강요와 노동에 비해 낮은 임금, 특히 장기 근속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대하여 사측에 개선을 요구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가리봉전자는 당시 구로공단의 여타 회사에 비하여 작업 환경이 그나마 나은 곳에 속하였다. 이는 가리봉전자와 같은 계열사인 롬 코리아에 1978년 6월 27일 노조가 결성되어 그 혜택을 가리봉전자도 고스란히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가리봉전자의 노동 조건은 인근의 여타 공장에 비해 조금 나은 수준이었을 뿐 결코 좋은 편은 아니었다.
1978년 독산동에 본사가 창립된 이래 구로공장[1983년]과 가리봉공장[1984년]이 추가로 건설되었고 1984년도 기업 순이익이 9억 원을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1983년 기준 초임은 월 11만 3천 원[일당 3,770원]에 불과하여 동종 업종인 한국시그네틱스[일당 5,510원]나 훼어차일드[일당 5,130원]에 비해 훨씬 낮은 임금 수준이었다. 그러나 사측이 그 마저도 타사에 비해 처우가 좋다는 이유로 입사 조건을 까다롭게 만들었고 장기 근속자에 대한 예우마저 좋지 않아 가리봉전자 노동자들의 불만은 더욱 증폭되었다.
이에 가리봉전자에서 1년 이상 근무한 학생 운동 출신인 서이자[본명 서혜경]와 근무 경력이 1년이 안되었지만 타 사업장에서 노동조합 활동 경험이 있는 윤혜련을 주축으로 하여 1984년 6월 7일 1차로 가리봉전자 노동자 7명이 금속노조연맹에서 노동조합 결성에 대한 교육을 받은데 이어, 다음날인 6월 8일에 금속노련회관에서 57명의 노동자가 모여 가리봉전자 노동조합을 결성했으며 구로동맹파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주요사업과 업무]
가리봉전자 노동조합은 가리봉전자 사측에 대한 정당한 임금 보장과 근로 환경 개선의 요구, 구로공단 내 타 노동조합들과의 연계를 통한 구로공단 전체의 근로 조건 개선 등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했다.
[활동사항]
가리봉전자 노동조합의 주요 활동은 가리봉 노동조합이 1984년 7월 11일 발간한 소식지 『소식』1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요 활동 내용은 임금 인상, 휴일 및 휴가의 준수, 과도한 노동 강요 금지, 연장 근로 수당·휴일 근로 수당·연월차 수당·퇴직금 등의 지급 준수, 작업 환경 개선, 조합원 자질 향상을 위한 교육 혜택 제공, 조합원들이 공장도 가격에 물건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협동조합 운영 등이다.
1985년 사측을 상대로 26.8%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투쟁을 주도하여 17.5%의 임금 인상과 10,000원의 휴가비 인상을 관철시켰다. 1985년 6월 20일 “평등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실현하기 위해 굳건한 단결력과 뜨거운 동지애를 바탕으로 민주 노동조합 운동의 발전과 전체 여성 근로자의 지위 향상을 위해” 지속적으로 투쟁할 것을 결의하였다.
[의의와 평가]
구로 지역에서 생겨난 첫 번째 노동조합이자 여성이 중심이 되어 구축되었던 노동조합으로 휴가 및 휴일과 관련하여 생리와 출산 휴가를 언급했다는 점이 당시 구로공단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의 권익 보호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가리봉전자는 1987년 10월 전자부품 제조 회사인 (주)로옴코리아에 합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