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1523 |
---|---|
한자 | 回甲宴 |
영어음역 | Hoegabyeon |
영어의미역 | One's 60th Birthday Celebration |
이칭/별칭 | 환갑,화갑,주갑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영순 |
[정의]
서울특별시 구로 지역에서 61세 되는 생일을 축하하는 잔치.
[개설]
회갑은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를 합쳐서 60갑자(甲子)가 되므로 태어난 간지(干支)의 해가 다시 돌아왔음을 뜻하는 61세가 되는 생일을 뜻한다. 회갑(回甲)은 환갑(還甲), 화갑(華甲)[혹은 花甲], 주갑(周甲)이라고도 한다. 회갑 때는 ‘회갑연’이라는 잔치를 하는데, 이것을 수연(壽宴)[혹은 壽筵]이라고 한다.
[연원 및 변천]
회갑을 맞이하여 수연을 언제부터 차리기 시작했는지 그 유래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중국에서는 화갑을 맞이해서 기쁘고 좋다는 기록은 있으나 성대한 수연을 베풀었다는 기록은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숙종(肅宗), 경종(景宗) 이전의 기록에서는 추정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 이유로는 수연에는 으레 회갑인에 대한 송축(頌祝)의 한시(漢詩)가 따르게 마련인데 숙종과 경종 이전의 기록에서는 이러한 축시(祝詩)를 찾아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악공(樂工)과 기생을 불러 풍악을 잡히고 기생은 권주가(勸酒歌)를 부르면서 헌수를 성대하게 장식했다. 환갑을 며칠 앞두고 수연시(壽宴詩)의 운자(韻字)를 내어 친척이나 친지에게 알려 시를 짓게 하고, 잔칫날 지은 시를 발표하면서 흥을 돋우었다. 또한 시를 모아 ‘수연시첩(壽宴詩帖)’을 만들어 자손 대대로 전하기도 하였다. 지금은 환갑에 기념사업을 하거나 행사를 하기도 한다. 회갑연은 사정에 따라 날을 가려서 앞당겨 하기도 한다.
당(唐)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곡강시(曲江詩)」에는 “사람이 70살을 사는 이, 예로부터 드물다[人生七十古來稀].”라고 했듯이 70살 된 노인을 보기 드물어 환갑만 살아도 큰 경사로 여겼다. 사람들은 환갑상에 놓은 밤·대추를 얻어다가 자손들에게 먹이면서 장수하기를 빌었다. 그러나 평균 수명이 길어진 오늘날에는 환갑이 점차 의의를 상실하고 있다.
회갑연이 처음 서민의 잔치라고 말하기 보다는 사대부, 즉 명문가의 잔치였다고 본다면 그들의 풍류(風流)인 수연시가 수반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에 이것으로써 추측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또 회갑이라는 행사가 일반화되면서 한문이나 한시를 모르는 계층에서도 성황을 이루게 되었다. 초대하는 범위도 가까운 종족과 절친한 친구 몇 명이 자기 집에서 조촐하게 하던 것이 이제는 범위가 넓어져 음식점을 빌려 수백 명에게 초대장을 보내어 자기를 과시하는 장소로 변했으니 바람직한 풍속이라고 할 수는 없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수연상에 진설하는 여러 과물에도 색다른 것이 오르게 되었다. 의복에서도 사모관대(紗帽冠帶)와 나삼에 족두리가 한복이나 양복으로 지어 입으면 되니 추세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절차]
회갑연은 크게 회갑상 차리기와 헌수(獻壽) 등으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다. 먼저 회갑상 차리기는 회갑일에 사용할 음식을 준비하는 데서 출발한다. 회갑상은 손님에게 대접할 과일과 음식을 염두에 두고 큰상에 한다. 물론 음식은 많을수록 좋지만 가정 형편에 따라야 하고, 계절에 따라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회갑을 맞이한 어르신이 평소 즐기는 음식이 있으면 특별히 준비하는 것이 좋다. 장만해야 할 음식으로는 과일류, 유과류, 다식류, 적류, 포류, 전류, 떡류, 어물류 등이다. 이러한 음식 등을 준비하고, 회갑상에 괴는 음식의 높이는 적게는 5치[약 15.2㎝]에서 많이 괼 때는 1자 5치[약 45.5㎝]까지 기수로 한다. 큰상을 차리는 법은 제사 때의 진설과는 정반대로 차린다. 큰상의 옆이나 앞에는 곁상을 차리며, 술상도 따로 차려야 한다.
회갑을 맞이한 사람에게 자녀들이 큰상을 차려 드리고 술잔을 올리며 장남 부부부터 차례대로 인사를 드리면서 축수(祝壽)하는 것을 헌수(獻壽)라고 한다. 이때 남자는 2배 여자는 4배를 한다. 그리고 친척과 빈객의 순서로 축배와 축사도 한다. 만일 회갑인의 부모가 생존해 계시면 회갑을 맞는 사람의 내외가 먼저 잔을 올리고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당사자들은 부모 앞에서 색동옷을 입고 돌상을 먼저 받는다. 이는 늙은 몸이라 하지만 부모 앞에서는 아직 어린애이고 젊다는 뜻으로 부모에게 즐겁게 해드리려는 효심에서이다.
이같이 잠시 돌상을 받았다가 곧 헌수 자리로 와서 자녀들로부터 인사와 축사(祝辭)를 받는다. 축수는 먼저 자녀들 모두 다 함께 큰절을 올린 다음 큰아들이 잔을 잡으면 며느리가 술을 따르고, 따른 술을 아들이 아버지에게 올린 다음 어머니에게 올린다. 그리고 만수무강하기를 축수하고 아들과 며느리는 함께 큰절을 올린다. 이어서 둘째, 셋째 아들 내외와 딸 내외의 순으로 잔을 올리고 축수하고 큰절을 올린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옛 구로에서는 회갑인의 부모가 생존해 계시면 큰상 하나를 더 준비하라고 하여 회갑인의 돌상도 차려야 한다. 돌상은 크고 둥근 상 위에 백설기와 송편, 팥고물을 묻힌 수수경단, 활·국수·실·대추·책·붓·먹·벼루와 자·쌀·칼·돈 등으로 돌을 맞이할 때의 상과 똑같이 차린다.
만일 형편이 여의치 못해서 큰상을 또 하나 차리지 못하면 하나만 차리되 큰상의 중간에 회갑인의 부모님을 모시고 본인은 그 옆에 앉으면 된다. 이날의 옷차림은 한복에 두루마기 차림이면 좋다고 본다. 옛날에는 남자는 사모관대를 하고 여자는 성장을 한다. 만일 조부모가 생존해 계시면 회갑인 당사자에게 돌잡이 때의 색동저고리를 입혀 드리기도 한다.
모셔야 할 손님들은 가까운 곳이면 직접 찾아가 오시기를 청하고, 먼 곳의 빈객이면 엽서로 청첩하면 된다. 이때 회갑연 당사자의 형제가 생존해 있다면 회갑인 부부의 옆에 앉아서 함께 받는다. 구로 지역에서는 1980년대 전후에는 회갑연을 집안에서 성대하게 치렀으나 요즘에는 뷔페를 빌려 회갑연을 베풀고, 혹은 회갑 기념으로 국내 및 해외여행을 하는 경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