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14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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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樓亭 |
영어음역 | Nujeong |
영어의미역 | Pavilion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영순 |
[정의]
서울특별시 구로구 지역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각과 정자.
[개설]
누정은 전통시대 자연 경관과 어우러져 휴식과 학문을 행하던 공간이다. 일반적으로 이름 뒤에 누(樓)·정(亭)·각(閣)·당(堂)·정사(精舍)·대(臺)·원(院)·헌(軒)·재(齋)·와(窩) 등의 명칭이 붙는데, 누·대·정 등은 유관(遊觀)의 공간에, 객사·각·원 등은 공공건물에, 헌·당·재·와 등은 개인의 거처에, 암(庵)·정사 등은 서원이나 사찰의 부속 건물에 주로 사용되었다.
[현황]
현재까지 구로 지역에 남아 있는 누정으로서 특별하게 알려진 것은 없으나, 마을 단위로 누정 형태의 건축물들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 오고 있다. 독산동 지역에는 강감찬(姜邯贊)의 후손이며 조선 세종 때의 문신 강희(姜曦)가 살았고, 시흥동에는 안경모·안순(安純)·안숭효(安崇孝)·권대재(權大載) 등의 걸출한 인물들이 살았으니, 이들 지역에 누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으나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거나 현존하는 것들은 없다.
정조는 아버지 장헌세자[일명 사도세자]의 능을 경기도 양주의 배봉산에서 수원 화산으로 옮기고 현륭원(顯隆圓)이라 하여 이곳을 자주 찾았다. 능행길은 동작동을 거쳐 지금의 과천으로 가는 것이 바른 길이었으나, 정조는 그 길 가운데 사도세자의 처벌을 주장했던 김약로(金若魯)의 무덤이 있다 하여 지금의 구로를 지나 안양으로 노정을 바꾸어 다녔다고 한다. 그리하여 1795년(정조 19) 안양에 있는 만안교를 돌다리로 개축하고 왕의 능행을 위해 지금의 시흥 2동에 행궁까지 지었다고 한다. 행궁의 규모는 모두 114칸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볼 때 이 행궁 주변에 분명히 누정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