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9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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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不正選擧抗議九老區廳占據籠城 |
영어음역 | Bujeongseongeohangui Gurogucheong Jeomgeonongseong |
영어의미역 | Dharna against Rigged Election in Guro-gu Offic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구창환 |
[정의]
1987년 12월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구청에서 일어난 부정 선거 항의 농성.
[역사적 배경]
1987년 12월 16일 제13대 대통령 선거는 역대 선거보다도 뜨거운 열기 속에서 치러졌다. 6월 항쟁이 만들어 낸 대통령 직선제이니 만큼 국민들의 참여도 매우 높았다. 이제 막 선거권을 얻은 젊은이부터 거동이 불편한 노인까지 국민 스스로 대통령을 뽑는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에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전국 각 투표장에는 투표를 하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또한 선거 부정을 방지하고 공정한 선거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11월 말부터 학생과 시민단체들이 참여하는 공정선거 감시단이 꾸려져 활동 중이었다.
[발단]
부정 선거의 증거를 목격한 시민들과 공정선거감시단은 선거무효화투쟁위원회로 전환하며, 선거 무효화를 위해 투쟁하였다. 1987년 12월 16일 투표가 진행 중인 오전 11시경 이상한 일이 발생하였다. 투표가 끝나고 나서야 이동이 가능한 투표함이 구로구청에서 밖으로 옮겨지는 모습을 한 시민이 발견한 것이다. 그 시민은 주위 사람들에게 부정 투표함이라고 소리쳤고 그 소리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투표함이 실려 있는 봉고차는 과자 상자와 빵 상자로 위장되어 있었고, 그 상자들을 헤집어 보니 문제의 투표함이 나왔다.
호송 경찰도 없는 선거 투표함 이송차였던 것이다. 흥분한 시민들은 오후 1시 30분경 투표 위조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구청 3층에 마련된 선관위 사무실로 몰려갔다. 그곳에서 투표함 1개, 붓 뚜껑 60개, 인주 70개, 정당 대리인 도장, 인주가 묻어 있는 장갑 6켤레, 백지 투표용지 1,500여 매가 발견되었다. 당시 시민들이 이러한 선거 물품이 투표 조작에 사용되었다고 믿는 근거는 장갑에 묻어 있는 인주가 방금 사용한 듯 선명했기 때문이다.
[경과]
1987년 12월 16일 오후 4시부터 약 5,000여 명의 시민들이 농성을 시작하였다. 운동원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의 항쟁이었던 농성은 17일 농성자 수가 더 많이 증가하였다. 구로구청 점거 농성이 점차 확산되면서 농성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구청 건물이 아닌 광장으로 몰리게 되었다. 공정선거감시단은 선거무효화투쟁위원회로 전환할 것을 선언하고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12월 18일 4,000여 명의 무장 경찰이 구로구청에 투입되어 농성은 모두 진압되었지만, 경찰의 과격한 무력 진압으로 시민의 분노를 샀다.
[결과]
2박3일 동안 항거하다가 끝내 무장경찰의 진압에 의하여 모두 1,050여 명이 연행되었고 그 가운데 105명여 명이 구속되었다.
[의의와 평가]
시민들은 17년 만에 국민의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게 되었다는 감격도 잠시, 야당의 후보 단일화가 무산되면서 다시 군부 독재가 되지 않을까 불안감을 느껴야 했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군부 독재의 집권 연장 야욕이 드러난 부정 투표함이 발견 되었으니 농성 시민들의 분노가 어떠했을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군부 독재가 종식되고 민주화로 첫 발걸음을 띄는 해에 또다시 부정부패의 개입으로 국민의 의사가 무시될 뻔 했던 것을 국민들 스스로가 의지를 가지고 민주화에 대한 강한 열망으로 스스로의 권리를 쟁취하고자 강력하게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2007년 12월 15일에는 서울 민주화운동기념회관에서 ‘구로구청항쟁20주년기념토론회’가 열려 부정 선거 항의 구로구청 점거 농성 사건에 대하여 기념하고 동 사건이 남긴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보는 기회를 가지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