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6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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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永根 |
영어음역 | Go Yeonggeu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정진 |
[정의]
개항기에서 일제강점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관료이자 항일 운동가.
[활동사항]
고영근(高永根)은 서북 지방의 상민 출신으로, 민영익(閔泳翊)의 시중꾼으로 궁중에 드나들다가 고종과 명성황후의 눈에 들어 1888년(고종 25)에 부평부사, 1893년 경상좌도병마절도사, 1898년 중추원의관에 임명되었다. 1898년 보부상들의 단체인 황국협회(皇國協會) 부회장을 지내다가 탈퇴하고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 가담하여 그해 11월 만민공동회의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이후 만민공동회를 대표하여 5흉 처벌 문제, 민회 허가 문제, 헌의6조(獻議六條)의 시행 문제 등을 요구하는 상소를 여러 차례 올렸다.
1899년 독립협회가 해산되고 만민공동회가 붕괴되자, 이를 다시 재건하기 위해 1900년 최정덕(崔廷德) 등과 함께 수구파 대신들을 암살할 계획을 세웠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피신하였다. 이후 일본으로 망명하여 생활하던 중 1903년 11월 종자인 노원명(盧遠明)과 힘을 합하여 명성황후 시해의 주동자인 우범선(禹範善)을 살해하였다. 이 일로 일본 재판소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조선 정부의 교섭으로 1909년 국내로 송환되고 죄도 면하게 되었다. 1919년 고종이 승하하여 홍릉(洪陵)에 묻히자 능참봉이 되어 무덤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