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592 |
---|---|
한자 | 盧恕 |
영어음역 | No Se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정진 |
[정의]
고려 후기 광주노씨 시조이자 문신.
[개설]
광주노씨(光州盧氏)는 광산노씨(光山盧氏)에서 분파된 성씨다. 광산노씨 시조는 노해(盧垓)로, 당나라에서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역임하고 신라로 건너온 도시조(都始祖) 노수(盧穗)의 첫째 아들로서 광산백(光山伯)에 봉해졌다. 후손들이 노해를 시조로 하고 광산(光山)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왔다. 그러나 이후 계대(繼代)가 실전되어 후손 중 고려시대에 정승(政丞)을 역임하고 광주군(光州君)에 봉해진 노만(盧蔓)을 1세조로 하는 계통과 대호군(大護軍)을 역임한 노서(盧恕)를 1세조로 하는 계통으로 갈라졌다.
[가계]
노서의 아들은 노단(盧亶), 손자는 노준경(盧俊卿), 증손자는 우의정을 지낸 노숭(盧嵩)이다. 노서의 후손은 노숭의 다섯 아들을 파조로 하여 분파되었는데, 큰아들 노상인(盧尙仁)은 양근공파(楊根公派), 둘째 아들 노상의(盧尙義)는 참의공파(參議公派), 셋째 아들 노상례(盧尙禮)는 사간공파(司諫公派), 넷째 아들 노상지(盧尙智)는 경력공파(經歷公派), 다섯째 아들 노상신(盧尙信)은 판관공파(判官公派)의 파조가 되었다.
[활동사항]
노서는 감문위대장군을 역임하였다.
[묘소]
묘소는 서울특별시 구로구 천왕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