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5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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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廷睦 |
영어음역 | Gim Jeongmok |
이칭/별칭 | 이경(而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양윤모 |
[정의]
조선 후기 부평부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언양(彦陽). 자는 이경(而敬). 증조할아버지는 김희수(金熙壽)이고, 할아버지는 김의숙(金義叔)이다. 아버지는 부사를 지낸 김건(金鍵)이며, 어머니는 조숙관(趙叔瓘)의 딸이다.
[활동사항]
김정목(金廷睦)은 24세 때인 1582년(선조 15) 사마시에 응시하여 생원시에 합격하고, 1583년(선조 16)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92년 호조정랑과 헌납(獻納) 등을 역임하면서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와의 교섭에 많은 일을 담당하였다. 1595년(선조 28) 이후 상원(祥原)·성천(成川)·선천(宣川) 등의 지방관을 맡았을 때 군사 훈련을 잘 시켜 상을 받기도 했으나, 방종한 생활을 했다 하여 처벌을 받았다. 1600년 비변사에 의해 유장(儒將)으로 천거되었으며, 다음해 사예(司藝)·내자시정(內資寺正)에 임명되었다. 이후 가주서(假注書)로 재직할 때 기록이 서투르고 글씨가 졸렬하다는 이유로 선조의 명에 의해 물러난 적이 있다.
1605년 12월 10일부터 1606년 2월까지 현재의 구로구를 관할하는 부평부사를 역임했고, 이후 참의를 역임하였다. 1612년 장흥부사로 재직할 당시 호서시(湖西試)의 참시관이 되어 제출한 시험 제목이 임해군(臨海君)의 옥사를 빗댄 것이라 하여 김시양(金時讓)·윤효선(尹孝先)과 함께 대북 정권에 의해 유배되어 유배지 회령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