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4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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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梁誌 |
영어음역 | Yang Ji |
이칭/별칭 | 언신(彦信),충민(忠愍)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남달우 |
[정의]
조선 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개설]
양지(梁誌)[1553~1592]는 1899년(고종 36) 간행된 『부평군읍지(富平郡邑誌)』 인물조에 옛 구로 지역에서 활동하던 인물로 기록이 남아 있다.
[가계]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언신(彦信). 홍문관대제학을 지낸 눌재(訥齋) 양성지(梁誠之)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첨정을 지낸 양사제(梁思齊)이다.
[활동사항]
양지(梁誌)[1553~1592]는 음보(蔭補)로 관직에 나아가 적성현감을 거쳐 1592년(선조 25) 삭녕군수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권징(權徵)의 후임으로 경기도관찰사가 된 심대(沈岱)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었다. 삭녕에 와 있던 경기도관찰사 심대와 함께 한양을 되찾기 위해 삭녕에서 기회를 엿보던 중 왜군의 야습을 받아 끝까지 항전하다가 심대와 함께 순사(殉死)하였다.
[상훈과 추모]
1796년(정조 20) 손자인 양성묵(梁性默)이 절일제(節日製)에서 장원한 것을 계기로 사후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삭녕의 표절사(表節祠)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