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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군 동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322
한자 始興郡東面
영어음역 Siheung-gun Dong-mye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오계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1914년 3월 1일연표보기
폐지연도/일시 1949년 8월 13일연표보기

[정의]

1914년부터 1949년까지 구로 지역에 설치된 일제강점기의 행정 구역.

[제정경위 및 목적]

시흥군 동면은 1914년 일제의 지방 행정 체제 개편 방침에 따라 재편되었다. 일제는 식민 통치의 효율적 수행을 위해 군·면 통폐합을 단행하였는데, 군과 면의 수를 줄여 지방 행정 경비를 절약함과 동시에 개편된 행정 구역에 조선총독부의 구미에 맞는 새 인물을 취임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

또한 토지 조사 사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도 지방 체제의 개편을 통해 불명확한 동리의 경계와 월경지(越境地) 및 두입지(斗入地)[군현의 경계를 정할 때 자연적인 지세를 따라 결정한 데서 나타난 현상으로, 군현 경계선의 굴곡이 심한 구역] 문제 등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내용]

1913년 12월 29일 반포되어 1914년 3월 1일 시행된 총독부령 제111호 「도의 위치·관할구역 및 부·군의 명칭·위치 관할구역」에 의해 본격적인 군·면의 폐합이 이루어졌다. 1914년 3월 경계가 획정되어 시흥군시흥군, 과천군 일원과 안산군[월곡면·북방면·성곶면 제외]의 대부분을 흡수 통합하였다.

1916년 4월 24일 경기도령 4호에 의해 면 통폐합 재편을 거친 시흥군은 9개 면 83개 행정동과 행정리로 확정되었다. 9개 면은 북면·신동면·동면·서면·과천면·서이면·남면·수암면·군자면이다. 이때 재편된 동면은 독산리·신림리·상도리·봉천리·가리봉리·시흥리·안양리로 구성되었다. 독산리·신림리·상도리·봉천리·가리봉리는 기존 시흥군 동면에 해당하며, 시흥리·안양리는 시흥군 군내면에서 폐합 조치된 것이다. 면 소재지는 시흥리였다. 이 가운데 가리봉리가 오늘날 구로구 가리봉동에 해당된다.

[변천]

1936년 4월 1일 시행된 총독부령 제8호에 의거하여 북면의 본동리·흑석리·동작리·신길리, 번대방리 일부와 도림리 일부가 경성부로 편입되었다. 이 과정에서 남은 북면의 동리가 시흥군 동면에 대부분 흡수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 구로구에 해당하는 시흥군 북면에 속하였던 도림리 일부와 구로리도 시흥군 동면에 속하게 되었다.

해방 후 1949년 8월 서울특별시 행정 구역이 확장되면서 시흥군 동면도 서울특별시로 편입되었다. 이에 따라 지금의 구로구에 해당하는 가리봉동, 도림동, 구로동은 모두 서울특별시 영등포구로 편제되었고, 1980년 구로구가 신설되면서 구로구로 옮겨졌다.

[의의와 평가]

1914년 일제의 지방 행정 체제 개편은 향촌 사회의 구조 변화를 가져왔다. 행정 구획 개편은 단지 공간적 통폐합의 의미만이 아니라, 일제가 우리나라 고유의 자치성과 공동체성을 부정하고 지방 제도를 식민지적으로 재편하려는 의도가 개입된 것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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